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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산정사 운영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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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09 16:20 조회1,9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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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선생님이 입을 여시었다.

그래 그 동안 學文硏究는 많이 했는가?” 하시는 것이었다. 이는 내 말하는 意中을 알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 동안 硏究學文中稅金逋脫에 관한 命理學的 分析陰性所得 等判別法 等에 대한 硏究報告를 드리며 德雲精舍에 들어가시면 자주 찾아뵙고 後學養成微力하나 助力해 보겠다고 하니 기뻐하셨다. 늦은 時間이었지만 德雲精舍 運營計劃도 열심히 설명하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에게 돈의 價値觀을 여러 차례 注入시켜 주셨다. 이왕지사 술업을 하려면 돈도 벌어야 할 것이고 또, 後學養成은 돈이 없으면 어렵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큰 선비는 돈이 없으면 뜻이 있다 해도 이루기 어려우며 아무리 學識豊富하다 할지라도 돈이 없으면 價値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며 큰 집을 지어놓고 기다려야 사람도 많이 모여든다는 論理였다. 現實的으로 볼 때 하나도 틀린 말씀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溫泉동으로 이사를 했을 때 선생님께 電話가 왔었다. 그러니까 온천동으로 온 것이 壬申年 크리스마스 무렵이었으니 아마도 癸酉年 초로 기억된다. 제산정사로 찾아뵈었다. 이때 선생님께서는 노골적으로 나에게 精舍를 맡기고 싶다는 心境을 털어놓으신 것이다. 서기를 두던지 아니면 혼자서 運營을 하던지 선생님의 뒤를 잇겠느냐고 말씀하셨다.

 

, 德雲精舍로 들어가시면 당분간 생활비도 필요하셨을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같이 생각해보자고 하시며 아직은 월 3백만원은 필요하다고 하셨던 것이다. 그만한 능력이 없다면 精舍를 폐쇄시키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霽山精舍引受해서 선생님을 돕고 德雲精舍에서 후학양성의 뜻을 이룰 있다는 保障만 되었어도 이때 精舍引受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모님의 性格을 잘 아는지라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었으므로 精舍引受하여 내가 발목 잡힐 理由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는 晸山에게 精舍를 맡기지 않으시겠다는 意中分明하게 밝히신 것이다.

 

率直한 나의 所感으로는 선생님은 責任져 드릴 수 있었지만 사모님을 돕고 싶지는 않았던 心境이었다. 그렇다고 선생님께서 돈이 必要해서 提案하신 것은 아니다. 家庭必要生活費念頭에 두신 것이니 하는 일마다 事事件件 妨害工作을 하는 사모님을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고 또한 나는 美國日本每年 3~5개월 정도 外遊해야 했던 事情도 있었던 것이다.

 

당시 온천동에서 相談할 때는 千萬원 정도의 소득은 있었으므로 선생님의 提議가 그다지 無理는 아니었고 設使 外國을 다니더라도 년간 3~4천만원 程度는 능히 감당하기에 무리는 없었던 것이지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문제로 인하여 외국여행을 핑계 삼아 苦辭했던 것이다. 실로 선생님의 恩惠를 입어 지금까지 學文硏究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衣食住에도 拘碍받지 않았으므로 師弟之間道理상 선생님의 提議를 받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利己的인 때문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뒤늦은 後悔가 아닐 수 없다.

 

끝까지 나의 마음을 回遊하시려던 선생님께 참으로 罪悚한 마음을 늦게나마 반성하며 사죄하는 바이다. 그토록 자존심이 도도하시던 선생님이 나에게 忍耐를 가지고 說得하시려던 眞心을 이제야 理解한다. 亦是 돈이 있어야 後學養成의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戊寅年에 밝히신 내용으로 보면 水原7백여평의 땅이 開發되므로 전 재산 200억원이 넘는다고 하셨지만 아무리 돈이 있어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면 어찌 돈만으로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지금도 집사람에게 감사하며 산다. 남편의 뜻이 아무리 崇高하다 할지라도 아내의 協助가 없다면 어찌 큰일을 성취하겠는가. 선생님은 才能財福을 두루 갖추셨지만 婦人의 마음을 얻지 못하셨으니 虛夢이 되었던 것이라면 나는 없지만 뜻을 같이 할 수 있으니 千軍萬馬가 부럽겠는가!

 

이로서 水營精舍에서 마지막 師弟의 만남이 되었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뵈었던 마지막이 되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精舍를 인수했다면 아직도 생존해 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後悔도 해본다.

 

결국 木體 木相水營으로 와서는 가지가 하고 줄기마저 들고 뿌리가 뽑혔던 것이니 어찌 理氣學에서 主張하는 居住인연을 放心하셨는지에 解答이 없는 것이다. 남에게는 警戒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항상 너그러운 것이 人間인지 모른다.

 

以後로는 내가 바빴던 關係水營精舍에는 들리지 못했고, 甲戌年咸陽으로 떠나시고 水營精舍는 문을 닫았던 것이다. 咸陽 德雲精舍로 들어가셨을 때 몇 차례 人事 次 訪問했다. 德雲精舍訪問했을 때는 한사람의 書記輔弼하고 있었는데 누군지 확실한 記憶은 없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울산에 있는 박태종 後學이었던 것으로 確認되었다.

 

몇 차례 訪問했는데 한 두 번은 선생님이 계시지 않으므로 뵙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고, 두 번 정도 만나 뵈었다. 마지막으로 訪問했을 때는 洪顧問과 같이 갔었는데, 마침 점심시간 이었는데 사모님이 精舍食口들 먹을 밥상만 차려가지고 들어가며 나와 洪顧問은 밥이 없으니 나가서 사먹으라고 하지 않던가.

 

모처럼 洪顧問과 선생님께 人事드리러 갔었는데 참으로 민망스러웠던 瞬間이라 하겠다.

이때도 내가 美國에서 돌아와 歸國人事訪問하면서 膳物도 한 꾸러미 에 싣고 왔는데 後學이기에 앞서 訪問客待接하는 것이 한심스럽다 못해 可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래가지고는 德雲精舍에서 선생님의 뜻을 펴시기는 99.9% 不可能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사모님이 숨 쉬고 있는 한 絶對로 안 된다고 하며 돌아와야 했다. 이후로는 다시 訪問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산골에서 점심 먹으러 나가면 다시 오기 어려운 곳이다. 자주 찾아뵙고 싶어도 한번 가본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찾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생님의 뜻은 아니기에 師弟間만 길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몸은 멀리 있지만 師弟만 끈끈했다고 生覺한다.

 

선생님이 수영정사를 정리하신 다음 나의 가정에도 풍파가 일어났던 것이다. 내가 주로 한국에 머물렀기 때문에 아이들은 집사람과 유학중이었는데 당시 조금씩 저축했던 자금으로 서울 중심에 사우나탕을 하나 매입하여 집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세계여행을 모색하고 있었으므로 그럴 경우 아이들 교육비 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가정하에 집사람에게 아들교육을 일임할 생각이어서 부탁을 하며 여차하면 나오는 수익으로 아이들 학비나 충당하라고 했던 것인데, 만일 그렇게 되면 나는 다시 후학양성을 위해 입산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고는 집사람과 처갓집 형제들이 공모하여 사우나탕(당시 시가 30억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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