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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사건의 일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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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2-08 16:28 조회1,2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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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사건

 

내가 알기로는 서울에 奇門遁甲大家로 알려진 이기묵 선생이 계시다. 이분은 理論으로는 天下大家라 하지만 손님을 앞에 놓고 實觀으로는 라면봉지로 끼니를 때울 정도라고 하니 어찌 學文만 했다고 通辯까지 大家가 될 것인가. 六爻大家라는 金東奭 先生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滴天髓 어느 句節에 보면 黨頭同榜 拜壇址하야 文學唯齊祿不齊라 하는 말이 있다. 이는 각기 타고난 精神이 다르고 智慧가 다르므로 스승이란 길잡이만 되어줄 뿐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後學才量에 따라 優劣이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이라는 뜻이다.

 

즉 같은 칠판 밑에서 머리를 함께 하고 같은 스승의 師事를 받았는데 社會進出해서는 받는 祿이 같지 않다 뜻이다. 이와 같이 함께 門中修學을 했다 할지라도 그 쓰임새는 다른 법이며 받는 祿도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물론 仁山 智山선생 등 모두 나의 能力批判은 하지 않았다고 해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그 분들도 나를 제산선생님의 後繼者로서 認定함에 否定的이지 않았다고 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수안동 사랑방에 머물며 주어진 業務充實했다. 나에게 주어진 業務問客相談과 틈나는 대로 學文硏究하는 길이었다. 누구의 감시나 간섭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 스스로의 約束이며 實薦이기 때문이다.

 

이승수 고문은 智山莊親同生으로 사랑방에 자주 놀러 왔다. 이웃에 가까이 살고 있었으므로 가끔씩 內外분이 食事招待도 해줬으므로 他鄕사리가 그다지 외롭지는 않았다.

 

鄭女史도 그랬고, 南菩薩家族처럼 이웃에 살면서 드나들었고 모두가 훗날 나에게 神話를 낳게 한 張本人들이다. 이렇듯 釜山市民의 따뜻한 配慮感謝하는 마음 하고 싶다.

지금까지도 그 이 끊이지 않고 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다.

 

特異했던 逸話 몇 가지를 소개한다.

지금도 生生하게 記憶되는 일들로 大部分 生存해 계신 분들의 이야기이므로 人格侵害가 되는 部分이 있다면 諒解를 바라며 살아있는 證言을 듣고 싶다면 언제든지 相面하여 檢證機會는 있다고 생각한다.

 

1. 金俊年君 家出事件.

 

己己庚己

巳卯午酉

 

丙寅年 學生東萊高等學校 2學年이었다. 全校首席을 다투는 秀才로서 여름방학 때 무단히 工夫에 부담을 느끼고 家出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친은 김해중학교 敎師였고 모친은 入試學園事業을 하는 분으로 敎育者 家庭이었다. 母親이 아침 일찍 찾아와서는 자기 아들이 유서 한 장을 남기고 家出했다는 것이다. 유서에는 太白山 깊은 山中에 절로 들어간다고 쓰여 있었다.

 

命造를 보니 偏印格卯木用神이며 庚金傷官喜神인데 가 없으므로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고 數學自身이 떨어지고 있으므로 學點管理에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命主의 마음을 읽지 않으면 어느 곳으로 갔는지를 알기 어려운 일이다.

庚金은 당연히 喜神하게 되고, 數學이 모자란다는 것은 를 지극히 갈망하고 있다는 證據라고 分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부에 부담이 되므로 가출한 것인데 母親原因을 모르겠다며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에 불만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부친의 나이를 물으니 亥生이라는 것이다. 모친은 丙戌生으로 格局은 되었지만 卯木用神卯戌合하므로 모친이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모친의 부담이 매우 힘들었고 數學에 부담이 컸던 관계로 海水를 찾아 머리를 식히고 싶었던 것이니 당연히 用神따라 木字, 春字, 東字를 따라 , 海字地名으로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全國都市名으로 水字가 들어가는 곳을 열거해 보니 木浦, 仁川, 春川, 東海市 등 이었는데 學生이었던 만큼 여행경험이 많지 않을 것이므로 작은 都市보다는 이름 있는 都市로 갔을 것이라는 判斷이 되었는데 西方庚金喜神이었으니 당연히 쪽도시는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西쪽에 있는 木浦仁川指目하게 되어 모친에게 묻기를 木浦에 친인척이 있는가? 하니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仁川에는 어떠냐고 물으니 작은아버지가 仁川에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木浦仁川으로 갔을 것이니 우선 仁川 叔父한테 연락해보고 오라고 해서 돌려보냈다. 그날 낮에는 學園事業도 있고 해서 그랬는지 저녁 食事가 끝날 시간쯤 되어 다시 찾아왔던 것이다. 仁川叔父한테 연락해봤는데 전혀 消息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木浦에 있을 것이니 搜所聞 해보라고 일러주었다. 준연이의 母親옥순씨였다. 鄭女史는 나에게 떼 아닌 떼를 쓰는 것이 아닌가. 차선생님이 우리아들 木浦에 있는걸 아신다면 木浦에 가서라도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는 注文이 아니던가.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앞으로 3일후면 消息이 올 것이니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3일후가 亥日로 기억된다. 해일이 되면 時支(잠자리로 본다)相沖이 되므로 不安定狀態에서 家出한 사람은 坐不安席 하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돌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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