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霽山先生님과 朴泰俊씨와의 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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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15 16:34 조회1,3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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霽山先生님과 朴泰俊씨와의 因緣.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朴泰俊씨를 처음 안 것은 에서였다고 들었다. 그러나 朴泰俊씨는 霽山先生님을 軍隊에서는 記憶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朴將軍士兵 朴光泰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毛筆 글씨를 잘 썼기 때문에 부관참모부에서 行政職으로 事務를 보셨다고 했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5.16 쿠데타가 발발하자 革命公約을 선생님이 쓰셨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박태준장군 예하부대에 勤務하면서 革命公約을 쓰시고는 곧 除隊를 하셨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庚戌年부터 乙卯年까지 6年間 부산에서 相談을 하실 때 朴會長婦人四柱를 보았다는 말을 들었으니 짐작컨대 이때 다시 만나 알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朴會長 婦人四柱를 볼 때 선생님의 通辯당신 남편은 대장간을 하는 대장 쟁이 로다

옛날 대장간은 규모가 작지만 現代대장간이 되어 規模가 좀 크구나했다는 逸話가 있다. 이 말은 인산선생에게 들었는데 선생님은 이미 군에서부터 박태준씨를 알았다면 포철회장이 된 것도 알았을 것이므로 이런 통변에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다.

 

戊辛庚丁

子卯戌卯

 

그렇다면 어째서 위 命造가 대장간을 했다고 했느냐 하는 점인데, 四柱만 봐서 제철공장을 한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제산학의 物象論에 눈을 뜨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朴會長의 부인 命造를 보면 더욱 놀랍게도 四柱全局火土로만 이뤄졌다는 것이니 夫婦間前生부터 鎔鑛爐와 대장간에 因緣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다.

婦人己巳生이며 三女一子四男妹를 두었다.

 

제산선생님과 朴會長간에 특별히 가까워 졌던 時機10.26사태 이후였다고 생각된다.

以前에는 朴會長과의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고 1980년 신군부시절부터 公企業非理內査對備하면서 朴會長 스스로 解決하기 어려운 某種事件을 제산선생님이 解決해주므로 그때부터 [霽山先生] 하면 恩人으로, 또는 스승으로 생각하며 親密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80以後로는 선생님이 他界하실 때까지 朴會長과의 이야기 素材相當히 많이 있다.

 

대략 선생님의 歷程에 대하여 내가 아는 範疇에서 몇 가지에 限定하여 소개해 보았다. 앞으로는 霽山門中入門하여 지내온 過程을 소개할 것이다.

 

閑談1: 신군부시절 전두환정권에서 포철비리 내사를 할 무렵의 개인비리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 이 말을 전하고자 하면 우선 박회장의 음주습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박회장은 비교적 술을 좋아해서 斗酒不辭라고 할 정도였다. 自由黨때 박정희와 두분이서 부산에 근무할 때 해운대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헤어지면 다음날 아침 박정희는 기상시간에 단 1분도 지체없이 조회에 참석하더라는 것이다. 박회장도 스스로 자신만만했지만 과음하고 아침조회에 나와 보면 박정희가 먼저 출근해 있더라고 했다.

 

閑談2: 포항제철 사장시절부터 부산일보 옆에 있는 청풍장이라는 요정에 자주 들리셨는데, 나도 여러 번 초대받아 들렸던 일이 있는 곳이다. 박회장과 같은 거물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전국에서 미모를 갖춘 기생들이 여럿 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봐도 정말로 예뻤다고 기억된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면 어느 대장부라서 미모에 반하지 않겠는가마는 1978년 경 박회장이 52세쯤 되었을 때 30년 연하의 22세 된 미모의 기생과 정을 나누었는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첫 정을 잊지 못할 정도로 박회장에게 푹 빠졌던 기생이 있는데, 박회장이 요정에 자주 들리지 않으면 포항제철 정문 앞에 가서 기다리곤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전두환정권때 내사가 심하던 시기라 매우 곤란했지만 아무리 회유해도 말을 듣지 않고 죽여달라는 식으로 집착했다고 한다. 이 위기를 제산선생님이 방어하게 된 사연인데

(이 소리가 사모님 귀에 들어가면 무덤에서도 부부싸움이 생길까 염려된다.)

여러 수단을 다 동원하여 집도 사주고 기생 친부모에게도 농사지을 땅을 사줘가면서 제산선생님이 총대를 메고 회유작전을 펴서 결국 포철 정문 앞에는 가지 않도록 하다 보니 어느덧 선생님과 정이 들어 내가 부산에 내려갈 때까지도 선생님을 따르곤 했었던 일화가 있다.

 

그 기생을 인산장과 나도 만나는 계기가 있어 지나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뭇 남성 앞에 얼굴을 파는 기생치고는 특이했다고 생각되었다. 한 남자를 알면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으므로 이때 사모님께서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선생님도 매우 귀찮게 생각하는 눈치여서 인산장과 내가 정을 떼도록 노력했었는데 결국 내가 기생의 관상을 보면서 너에게는 이미 일본에 애인이 있음에도 어찌하여 미련을 갖는가? 하고 허를 찌르는 바람에 다시는 선생님 앞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했던 일화가 있었다.

그 기생의 명조가 아련히 생각나는데 과연 사주팔자도 예쁘게 생겼다.

 

己丁己丁

酉亥酉酉 고향은 전남이고 어려서부터 歌舞를 익히며 기생수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명리교과서에서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地支四貴人을 하고 得 長生하므로 얼굴만 팔아도 數百億은 넉근히 되는 그릇인데 얼굴에 아릿다운 도화 꽃이 피었으니 어찌 이춘풍이 외면할 소냐! 더하여 꽃반지도 끼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뭇 남성을 홀리기에 부족이 없는 팔자다. 지금은 무엇을 하며 어디에 사는지 소식을 알면 한번 늙은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

 

각설하고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선생님이 霽山學定立하기 까지 얼마나 힘든 過程이었나를 짐작할 것이다. 단지 선생님이 工夫하신 過程紹介하려다가 너무 길어졌지만 道人들의 行蹟이기에 재미가 없지는 않으리라는 期待를 한다. 오히려 나의 修練過程이 재미없을 수 있지만 있는 데로 아는 만큼 率直하고자 하는 마음 百分理解 하여 주시고 글 솜씨는 두서가 없더라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위에서 밝힌 이야기 중에 實名擧論한 점에 혹시라도 名譽侵害部分이 있다면 넓은 諒解를 바란다. 선생님에 얽힌 逸話讀者들의 要請이 있을 繼續해서 아는 만큼 해드릴 것도 約束하며 혹 질문이 있다면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성실히 답을 드리겠다.

 

다음호부터는 제산문중 수학편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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