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 유고와 12.12사태  > 지혜의샘

본문 바로가기
즐겨찾기

회원메뉴


농장소식

대야농장 상담문의

080-7000-9988
010-3585-0188
054-437-1032

평일 AM 09:00~PM 20:00

토요일 AM 09:00~PM 18:00

대야농장

지혜의샘 | 100% 국내재배 신선한 야생블루베리 목록

박정희대통령 유고와 12.12사태 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14 16:34 조회1,441회 댓글0건

본문

박정희대통령 유고와 12.12사태

 

大統領有故와 더불어 緊迫하게 돌아가던 己未年 초겨울, 12.12事態發生하며 全斗煥 盧泰愚 新 軍部勢力登場하면서 權力掌握하게 되었을 무렵 제산선생님이 더욱 바빠 지셨으리라는 것은 不問可知의 일이다.

 

軍將星級들과 親分이 두텁던 시절이었고 榮辱에 불타오르던 將軍들은 앞날의 政局關心事였을 것이며 政客亦是 大權慾野心滿滿했을 것은 明若觀火한 일이다.

 

소위 三金軍部 實勢의 힘겨루기가 보이지 않는 戰爭不辭케 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박근혜정부와 흡사할지도 모른다. 자기 아버지가 물러나면서도 나라가 시끄럽더니 그 딸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 어쩌면 그 가문의 유전인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박근혜의 운명분석을 공개하지 않겠지만 憲裁에서 탄핵이 가결되고 나면 이 자리에 운명학적 분석을 공개할 생각이다.

 

고로 全斗煥軍部 勢力現 政治人들의 非理剔抉한다는 名目으로 勢力을 굳혀나갔으며 在野 政治人들은 虎視耽耽 機會를 노리고 있을 무렵, 全斗煥對立하던 實勢들은 선생님의 助言이 그야말로 甘露水와 같은 時機였을 것이다. 이미 선생님은 全斗煥씨가 大權掌握하게 되리라고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정권의 실세였던 三許역시 제산선생님을 대단히 신봉하며 선생님이 영면에 드신 후에도 49제에 참석할 정도로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박정희 정권말기부터 이미 전두환의 사주를 감명 받아 대권을 쥐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여러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韓國易術人協會 監察部長 박장열군이 先生任을 찾아와서 다음大權三金中에 누가 잡겠느냐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안타깝다는 듯이 易術人協會에 그렇게도 앞일을 내다보는 人材가 없느냐고 하시며, 全斗煥 將軍命造나 아느냐? 面駁을 하셨다고 朴將烈 君했던 것이다. 全斗煥將軍對立勢力에 있던 將軍들은 모두 轉役을 서둘렀고 쫓겨나는 것보다는 自進 轉役하는 것이 이롭다고 生覺했던 것이다. 이들도 多數가 선생님의 智慧를 빌어 行動했다는 情況여러 곳에서 感知되었다.

 

이 무렵 金某 三星將軍이 선생님께 諮問한다음 轉役을 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되겠느냐고 묻자 선생님께서 如意하니 建設會社나 해보라고 했던 逸話가 있는데, 여기서 선생님이 크게 失手를 하게 되므로 그동안 쌓아놓았던 名譽失墜시키게 되는 를 남기게 되었다. 아마도 김장군과의 秘話가 없었더라면 내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回顧해본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선생님과 나와의 인연은 이미 前生부터 깊은 인연이 있었기에 후계구도를 위해서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었다고도 생각해본다. 四柱因果法으로 봐서도 否定할 수 없는 인연이었으며 前生論을 이야기 하면 믿어지지 않겠지만 過去生에 한번은 내가 선생님의 스승이었었고, 한번은 弟子로 맺어졌던 因緣의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이니 現生엔 선생님이 먼저 出生하셔서 깨달음을 얻으신 연고로 今生後繼者가 되었던 것으로 믿는다.

 

事緣則 金將軍個人運希望的이었지만 全斗煥反對勢力剔抉하려는 試圖에 의하여 轉役將軍들에게 不利益하게 된다는 事實豫想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當時 轉役將星들이 轉役後勢力結集할 것을 念慮하여 전두환정권에서 자금줄부터 차단하였던 것이다.

 

金將軍은 전역하여 建設會社設立하게 되었는데 會社名도 선생님이 지어주셨다. 東住建設會社였던 것이다. 東住建設設立할 때 총 資産5억원이었는데 김장군의 전재산을 모두 投入하여 建設事業을 하려고 했으나 金融에서 資金줄을 遮斷하는 바람에 자금회전이 막히게 되었으니 不渡가 날것은 뻔한 일이다.

 

이런 상황을 豫見치 못한 선생님의 失手 때문에 東柱건설회사는 創業 즉시 閉業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김장군은 軍人의 패기가 넘치는 사람으로서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窮餘之策으로 親知資金을 몽땅 投入시켰지만 건설회사라는 것이 당시의 여건으로 보나 지금의 여건으로 보더라도 銀行金融을 쓰지 않고서는 經營을 할 수 없는 事業이었다는 것이다.

 

고로 김장군이 선생님을 찾아와서 전후사정을 論議한 끝에 건설회사가 이대로 한다면 김장군의 全 財産을 하루아침에 말아먹게 될 뿐아니라 거리로 나 앉아야 할 판이었던 것이니 이 모든 責任을 선생님께 傳家하려고 作心했던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많은 국내재벌 등 금융계에 人脈이 넓은 제산선생님의 能力을 잘 알고 있어 어떤 수단을 動員해서라도 資金力이 있는 同業者를 소개시켜 줄 것을 希望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는 匕首를 들고 선생님 앞에 와서는 이제 나는 거리로 나 앉게 되었는데 당신이 운세를 잘못 판단해 주었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으니 責任을 지라고 떼를 쓰기에 이르렀던 것인데,

이때의 선생님 운도 格局葬地가 되어 사업하면 패망하는 매우 어려운 시기였던 것이다.

如意치 못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기에 大衆相談을 쉬고 있었지만 厄運當到하면 어떤 境遇가 되었더라도 悲事發生하게 된다는 眞理를 몸소 크게 겪었던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自動車를 타고 다니면서 남들의 事故를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하지만 나만은 事故에서 멀리 있는 것처럼 無關心한 것과 같이 남은 죽어도, 나는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人間이다. 나 역시도 飛行機를 타고 世界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는 생각을 해본바 없었고, 설령 비행기가 추락한다 해도 나는 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는 自動車320키로의 速度를 내며 過速을 하면서도, 남들에게는 過速하면 事故를 당한다고 注意를 주는 이치와 같이 自身厄運에는 항상 너그러운 이니 죽어보지 않으면 죽음의 恐怖忘却하는 법이다.

과거 미국에 있을 때 라스베가스를 다녀오면서 로키산맥을 지나 콜로라도를 지나올 때 최고속도 200마일(320km)로 주행한 경험이 있었지만 조금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다만 단속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만 있었던 때가 있다.

 

선생님도 例外는 아니었던 것이다. 찾아오는 厄運惡緣未然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야농장 | 대표 : 차윤득 | 사업자번호 : 607-06-67726 | Tel : 054-437-1032 | | 팩스 : 054-437-1034
주소 : 경북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 559(신주소:대야길 44-109) | 이메일 : daeyablueberry@hanmail.net
통신판매번호 : 제2008-경북김천-0007호
Copyright © 대야농장.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