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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부마사태와 부산시경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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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10 16:35 조회1,5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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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己未年 釜馬事態釜山市警局長 이수영.

 

1979104金泳三 議員職 剝奪로 비롯된 부산 마산지역의 박정희정권의 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중봉기가 발생했던 時機에 부산시경국장 이수영은 계엄령선포와 더불어 치안이 어지러워지자 제산선생님을 市警局長室로 불렀다.

 

이수영국장은 庚午生으로 선생님보다 5살 연상이었으며 過去부터 親分이 있었던 관계로 敬語는 쓰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수영국장이 궁금했던 것은 앞으로 이번 사태가 어떻게 飛火될 것인가에 關心事였다.

참으로 영리하고 지혜로웠던 분으로 기억된다.

 

이국장이 묻기를

여보게! 자네의견을 듣고 싶네.” 하자

이번사태로 국장님을 가장 아껴주시는 분의 목이 날아나게 됩니다.”

그러자 이국장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다시 물었다.

이 사람아, 그렇다면 대통령 身邊有故라도 생긴다는 말인가?”

事實로 이수영국장은 박정희대통령의 信任寵愛를 받던 분으로 대통령이 부산시경국장으로 임면하여 취임했던 것이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한참동안 고개를 떨구고 깊은 생각에 빠졌던 이국장이 다시 말을 꺼내며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處身해야 좋겠는가?”

“......”

辭任하심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市警局長이면 경찰로서 대단한 地位였고 앞으로 治安局長자리까지 넘보고 있던 野望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하여 虛脫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이번 事態本人이 판단해 보더라도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自體分析이 있었으므로 선생님의 豫見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後日 내가 만나본 이수영씨는 自然學運命學에 대한 信賴度가 매우 높았으며 運命이라는 存在를 깊이 信奉하는 그런 분이었다. 그러므로 제산선생의 능력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를 믿지 않으려 해도 어렵고, 믿으려 해도 어려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평생 경찰에 몸담아온 그가 이제 公職에서 물러나야 한단 말인가, 그의 갓 나이 쉰 살이었다.

 

대통령의 信任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그로서 앞으로 얼마든지 乘勝長驅할 나이였으며 특히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온 그가 아니던가. 한편 靑天霹靂과 같은 선생님의 말씀에 한참은 멍했을 것이지만 決斷力이 빠르고 智慧로웠던 그였기에 野望에 몸을 망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局長이라는 감투에 연연했다면 全斗煥 權力犧牲者가 되었을 것은 明若觀火했던 일이었지만 슬기롭게 榮辱을 한순간에 벗어던지고 處身하므로 後患을 당하지 않았으니 어찌 霽山先生恩人이 아닐 소냐.

 

이수영씨와 全斗煥씨와의 사이는 그다지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理解할 필요가 있다.

제산선생은 다음대권은 보안사령관이라는 所信過去부터 믿고 있었기 때문에 박정희신변에 有故가 발생한다면 당연히 全斗煥이가 執權하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부산에 내려왔을 때도 선생님과 자주 술자리를 하면서 지난세월의 회포를 풀기도 했으므로 이수영씨의 인품을 소상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대통령에게 有故가 있을 것을 알았던 것일까? 과거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하여 李厚洛씨에게 모진수모와 고통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때는 전두환씨가 보안사령관이었으니 당연히 이수영국장에게 전두환이가 다음집권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을 것이므로 이수영국장과 전두환씨의 관계는 悲觀的이었으므로 과감히 사직을 했던 것이지만 대통령이 유고를 꼭 당한다고 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 命理學者로서 關心事라 할 것이다.

 

戊庚辛丁

寅申亥巳

 

甲乙丙丁戊己庚

辰巳午未申酉戌

 

命造霽山學蘭明學觀點으로 보면

己未年으로 權勢가 끝난다고 하는 것을 쉽게 理解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수준의 命理學으로는 도저히 감도 잡지 못할 것이지만 霽山學으로서는 능히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었던 命造라 하겠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김재규로부터 弑害될 것도 알고 계셨던 것일까? 하는 疑問도 제기되겠지만 그에 대한 선생님의 見解는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豫測이 어렵지만 비서실장 甲戌生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丙寅生 김재규의 명조를 알고 있었다면 능히 짐작은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戌生(차지철) 막강한 권력의 칼을 무덤에 파묻는 인연이었으며, 寅生國祿하며 七煞로 변하게 되는데 젊었을 때라면 능히 감당할 수 있으나 노령에 들어서는 을 피하기 어려운 중, 己未年부터 甲運에 당도하게 되는데, 이때 부터는 權座가 아니며 국민의 머슴이 되어야 하는 운이었으므로 玉璽(옥새)가 날아가는 운이며 己未年用神(생명주재신)葬地(무덤)에 드는 해이니 능히 가늠할 수 있었으나 당시 막강한 권력을 장악했던 통치자가 과연 을 피할 수 없었겠나? 하는 짐작으로 과연 事前에 예단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韓國命理學界大家라고 하는 분들도 10.26事態豫見했던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던 實情이니 霽山學偉大함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단 서울 안암동 高大앞에 계시던 觀相學大家이신 梁學馨선생님은 우리가 관상학을 공부할 때 己未年悲事를 예견하셨다고 했다. 나는 1981년 말부터 다음해 봄까지 공부를 했기 때문에 사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실로 사진을 대조하며 검증한 바로는 이미 죽음이 결정나 있었던 것이었다.

 

정확히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弑害될 것을 알고 계셨다. 공부하는 시기여서 크게 관심은 두지 않았었지만 사후에 충분한 연구과제가 되는데 부족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상학이론으로는 어떤 관점으로 판단했는가를 학술적 이해를 도와드리고자 한다.

사진이나 멀리서 보는 人相은 찰색을 잘 살피기 어려우므로 골격과 운로로 분석하게 되므로 약간씩 실수가 생길 수 있지만 대통령시해라는 큼직한 문제는 大局으로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1975년 이후로 관상학을 공부하던 양선생님의 제자라면 여러번 학술적 이론을 들어봤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주감명 할 때 大運 小運을 정한다. 관상학에서도 소운 대운으로 구분하여 대국과 소국을 분류하여 통변하는데, 박정희사주에 정보기능을 차지철이 막아버리는 통변이 존재하지만 相學에서도 情報機能이 있는데 정확히 63세에 정보기능이 마비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사람의 五官마다 각기 機能이 있는데 즉 耳 眉 目 口 鼻.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잠시도 그 작용이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 어느 기관의 작용이 강하고 약한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으니 소위 관상 대운법이라 한다. 이런 학설은 麻衣相書에도 없는 내용으로 양학형선생님이 문중에서 전래되는 秘傳을 새로이 정리하신 學說로서 대단히 적중률이 높다 할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도 너 몇 살에 죽을 수 있다라고 단언하기도 하니 주로 山中修道하는 스님들이 이런 看法을 조금만 배워도 한마디씩 귀신이 통곡하리만치 말해주곤 한다는 것이다.

 

관상학에 통달하게 되면 相學의 이치를 모르는 분들에게 신들린 사람취급을 받게 되어있다. 슬쩍 지나치면서 얼굴한번 힐끔 처다 본 것이 전부지만 때론 그 사람의 마음속까지 꿰뚫어보는 혜안이 생기기 때문에 자칫하면 惑世誣民의 도구로 전락할 우려도 있으므로 아무에게나 그런 秘法을 전해주어서는 안 된다는 戒言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산선생님은 이미 壬子年 10維新以後 維新幽神이라고까지 했던 것은 이미 그때 짐작되었던 일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金泳三씨가 己未年 104일에 의원직 박탈이라는 초강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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