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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선생님 수행초기 방황하던 시절 (노약국증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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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4 16:39 조회1,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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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그러다가 어느 날 神氣發動하여 한때 彷徨하면서 노 藥局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도 짐작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짐작이므로 신빙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에 留意하기 바란다.

 

그러다가 淸虛堂께서 九靈三精呪淸心經을 주시면서 百日參禪에 들기를 권했는데 呪文을 받들고 智異山 벽소령으로 가서 百日祈禱를 했으나 失敗했고 다시 挑戰하기를 여러 차례 反復했다고 선생님께 들었다. 百日參禪精誠을 다하려고 하면 거의 끝나갈 무렵이면 꼭 魔障이 생겨서 끝을 맺지 못했다고 하셨다.

 

한번은 白雲山 通神庵에서 百日 參禪三昧에 드셨는데 90餘日이 지나서 蜂我聲至 (온 세상이 벌이 웽웽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현상)段階에 이를 무렵 갑자기 어머니가 아버지 산소에 가시다가 도랑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事故를 당하는 現像이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道伴을 보고는 집에 가서 어머님한테 며칠간만 아버지 산소에는 가시지 말라고 전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消息을 들은 어머니는 왜 산소에 가지 말라는지 궁금해서 산소를 가시다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는 消息이 왔다는 것이니 百日을 며칠 남기지 않고 蜂我聲至段階까지 가서는 어머니의 切足事故下山하여 成功하지 못했었다는 말씀도 들었다.

 

한번 下山하면 連續精進不可할 뿐 아니라 다시 挑戰하기 까지는 한동안 準備期間必要하므로 一年에 한번 試圖하기가 어려운 이다. 또한 百日中에 하루만 빠져도 처음부터 새로 始作해야 하는 것이 精進이다. 이렇듯이 百日精進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結局 白雲山 通神庵에서 得道하실 때까지 수없는 施行錯誤를 겪으셨고 彷徨도 많이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왜냐면 得道하신 다음부터는 修行에 관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인데 修行하실 때의 逸話가 많은 것으로 보아서는 여러 번의 失敗가 있었다는 證據며 벽소령에서의 逸話가 더 많다는 것은 得道 前苦行過程이었던 것이기에 미루어 짐작이 가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벽소령에 계실 때의 逸話가 여럿이 있다. 山中에서 공부를 할 때는 가장 힘든 것이 衣食住 解決이다. 아무리 道人이라 할지라도 먹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법, 그래서 修道者들은 가장 적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수단으로 生食을 하기도 했으며 火食조차 經費時間浪費를 주리고자 하지 못하고 가루와 물 한 컵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므로 健康을 망치기도 했던 것이다.

 

[제산선생님도 6個月間 솔잎가루만으로 生食을 하셨다는 말을 선생님의 丈母로부터 들었다. 이때가 乙巳 1965년 여름이다.]

 

當時 벽소령에는 6道伴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 선생님이 가장 聰氣가 있었다고 했다. 道伴들과 越冬糧食을 마련하고자 萬行(托鉢)을 해야 했는데 適任者가 없으므로 선생님이 장날을 하여 印月장터로 나갔다는 것이다. 장터에 들어섰더니 入口에 선생님의 님벌 되는 분이 돗자리를 깔아놓고 姓名學 책 한권을 펴놓고는 이름鑑定(作名 解名)을 한다고 앉아있더라는 것이었다. 事實은 선생님도 萬行을 나왔으니 四柱를 봐주던 이름풀이를 해주던 돗자리를 깔아야 할 판이었는데 님벌 되시는 분이 先占하고 있으니 그 옆에다 자리를 펼 수는 없고 해서 형님과 同業? 한판 벌려볼 심산으로 형님 뭐 하십니껴?” 하니

이보게 同生 내가 姓名學을 공부했는데 이 姓名책이 참으로 神奇하게 잘 맞는데이 자네도 한번 시험해 보려는가하며 자신만만해 하더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반가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面駁할 수도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면서 형님이요 내가 대신 봐줄 테니 지켜보이소,” 하고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한나절이 다 되어도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 마침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 으스스한데 추위를 이기려고 옷깃을 저미고 시린 손을 비벼가며 주린 배를 웅크리고 있는데 破場이 되어 자리를 거두려고 하는데 영감 한분이 다가 오더니

 

이보게 젊은이가 이름풀이를 할 줄 아는가?“

, 염려마시고 이름만 대보이소하니 영감이

으흠~” 하더니 큰 기침한번 하고는

높을, 남녁심을이네 어디 한번 풀어보게하더라는 것이다.

 

선생님이 이름을 푸시는데,

 

흐흠하고는

노인장께서는 높은 언덕 남쪽에 나무를 심었으니 果樹園을 하십니더

하자 최노인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참말로 그것이 이름에 있단 말이가?“ 하기에 말을 이어

, 그렇습니다.”

그런데 노인장 손자가 하나 있는데 다리를 접니더하고 말하자

최노인은 半驚半喜하며 喜色滿面하더니

 

자네 참말로 孫子다리가 아픈게 내 이름에 있능가” “그게 사실인가?” 하며 재차 확인을 한 후, “눈도 오고 하니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자네 나 따라 갈 수 있건나

하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눈치 빠르고 自尊心 强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실 선생님이시다.

이런 機會를 절대로 놓칠리 없었을 것이다.

춥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형님에게 체면도 살려드려야 하고 이참 저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쾌히 應諾하니, 최노인이 앞장서서 가자는 곳을 따라갔는데 南原을 지나 전라북도 임실로 가더라는 것이었다.

印月장터에서 임실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짐작컨대 임실까지 가려면 버스를 탔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버스 타고 갔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나 먼 거리였기에 추측해 본 것이다.

 

임실 최노인댁으로 도착해보니 사랑채도 큼직했고 대궐 같은 집에 사는 부호였다는 것이다.

동네사람들이 굽실거리는 것으로 보아 대지주임에 틀림없어 보였다고 하셨다. 도착하자 안채에 연락하여 밥상을 채려오고 대접이 융숭했다. 그날은 사랑방에서 형님과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최노인이 동네 어른들을 소집하여 이름풀이에 대한 소개를 하니 너도 나도 이름풀이를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노인 사랑채에서 보름간이나 감명을 했다고 하니 시골동네에서 보름씩이나 상담을 했다면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웃동네 사람들까지 소문을 내서 불러 모은 것이 아닐까 짐작이 간다. 보름동안 번 돈을 간추려서 土窟에서 越冬生活費를 제외하고 나머지가 당시에 논을 다섯 마지기 값이 족했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약간의 과장법도 쓰시므로 전액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돈이 들어왔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이 없다. 논 한마지기 값이 얼마였는지 몰라도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큰돈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인데 시골살림이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제기 해본 것이다.

 

나는 무엇이던 의심부터 하는 습성이 있다. 의문과 비판 이런 성격 때문에 命理學을 공부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 점도 否認할 수 없다. 하나도 의심, 둘도 의심, 셋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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