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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중수학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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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4 16:42 조회1,2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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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霽山 門中修學入門하다.

 

더위가 氣勝을 부리던 19847下旬頃,

霽山先生任을 모시고 霽山學에 깨달음을 얻고자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決定하자 나를 아끼고 좋아하던 분들은 大部分 挽留하는 것이었다.

(: 霽山學自然理氣物象門中秘傳이라고 理解하기 바란다)

 

이는 나를 아끼는 분들의 愛情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 분들에게 늦게나마 眞心어린 感謝의 마음을 한다. 여러 同僚知人들은 當時 나의 實力으로도 一家를 이룰 수 있는데 뭣 때문에 朴道師를 따라가려 하느냐며 挽留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했던 분들도 내가 부산으로 내려오자 霽山精舍로 찾아와서 霽山學을 배워 보려고 試圖한 분이 여럿 있었으니 두 가지 뜻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普遍的으로 術客들의 收入이 월 百萬원선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사무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 以上上廻하였으므로 많은 期待를 했던 것도 事實이었기에 더 이상 공부해서 무엇 하겠느냐 하는 점과, 한편 내가 霽山學을 더 工夫하게 되면 自己들과의 知識均衡이 깨어질 것이라는 憂慮排除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위와 같은 生覺이었다고 할 때 結果的으로 命理學文보다는 먹고 살기 위한 手段으로 生覺한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回顧해 보면 그런 憂慮現實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했던 知人들이 내가 제산문중에 입문하고 부터는 잘 만날 機會도 없었을 뿐더러 消息斷絶된채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學文水準差異가 나므로 對話相對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상에서도 왕따가 되고 있지만...

 

學文으로 안 知人知的次元의 균형이 깨지면 멀어지게 되어 있다.

박장열군과 강보살만 贊成했고 斯界多數反對했지만 霽山學硏究하려는 나의 決心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自己心爲師說破하던 나로서 누구의 勸誘나 충고에 움직일 내가 아니었다. 당시 正確히 말해서 甲子年 224에 신촌 공부방을 마련하여 자리한지 不過 3개월 만에 基本的으로 하루에 10餘名의 손님이 찾아들었다.

 

觀相학과 斷時占으로서 소문이 났던 것이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곳에 오래 있으면 長安을 주름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돈벌이 수단이나 人氣術客에 뜻이 없었기에 그런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 있었던 것이며 다만 學文硏究必要生業手段에서 사무실을 마련했던 것이었으니 人生價値觀이 같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霽山門中修學을 마치고도 硏究沒入하기 위하여 선생님의 勸告마저 뿌리치고 국제적인 철학의 길을 넓히고자 해외로 進出했던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돈 벌기 위한 학문이었다면 날이 새면 상담고객이 밀려드는 부산사무실을 정리하고 김천시내에서도 물어물어 찾아와야 하는 벽촌으로 농사짓겠다고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상담수익을 구지 논한다면 최소 10배 이상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新村에는 미아리 고개와 같이 무당들이 상당수 있었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약 150군데 以上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무당으로부터 所聞이 빨리 알려졌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顧客이 찾아왔던 것인데, 한두 달 지나서 부터는 공부방에 異常現象도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니 龍門山 修練할 때 일어났던 現象과 같은 天貢을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비교적 少時的부터 커피를 좋아했으므로 은 굶어도 커피는 마신다. 라고 할 정도였는데 어느 날 커피가 떨어져서 來日은 커피를 사야겠구나, 하며 퇴근하였는데 다음날 아침 出勤하여 을 열자마자 손님이 커피 한통을 들고 왔던 것이다.

 

그 후로 여러 번 그런 일이 反復되었던 것이니...이제 설탕이 떨어졌구나 하면 영락없이 다음날 첫손님이 설탕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공부방에서 먹고 마시는 것 중에 必要하다는 말만 하면 다음날 아침에 오는 손님이 시킨 듯이 들고 오는 것이었으니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때 三星에 다니던 己亥生 셋째 同生이 자주 들렸는데, 營業部에서 外勤했으므로 공부방으로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런 사실을 보게 되었고, 박종팔 선수 게임예측이 敵中하고 난 以後로 동생이 돌연 辭職하고는 命理神秘自己工夫해 보려는 心算이 있었던 관계로 新村事務室에서 宿食하며 지내게 되었는지라 繼續되는 이러한 일에 同生

 

형님!”

아무래도 형님은 들린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고서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형님 말하는 데로 물건을 가지고 오니 이해가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의심해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아무런 神氣神通力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疑問이었을 것이라는 점 충분히 이해한다.

 

이점에 대해서는 龍門山에 있을 때 經驗해 본 일이 있었으므로 그다지 關心을 두지는 않았다.

 

天貢眞實

신라 때 유명했던 義湘祖師가 중국에 유학하던 중, 中國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道僧이 있었으니 圓光法師였다. 당시 중국 불교계에 新羅에서 유학 온 義湘이란 젊은이가 매우 총명하고 깨달음이 비범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원광법사가 한번 시험해보고 픈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자기의 깨달음을 능가할 도승이 없다고 자부하던 시기였다고 했다.

 

원광법사는 하루 세끼 식사를 끓이지 않고 하늘에서 天神이 바치는 天貢을 받아 자셨다고 하니 가히 그 경지를 짐작은 할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의상조사를 점심때 초빙하여 자기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약속한 날에 의상이 원광법사가 머무는 암자를 방문하는데, 의상은 원광의 마음을 미리 읽고 있었으므로 소문으로 들은바가 있는지라 天貢으로 점심대접을 하려는 구나 생각하고는 迷路처럼 海印圖를 그려 그 속에 法性偈 210를 써서 품에 지니고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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