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걸이 기도공덕  > 지혜의샘

본문 바로가기
즐겨찾기

회원메뉴


농장소식

대야농장 상담문의

080-7000-9988
010-3585-0188
054-437-1032

평일 AM 09:00~PM 20:00

토요일 AM 09:00~PM 18:00

대야농장

지혜의샘 | 100% 국내재배 신선한 야생블루베리 목록

턱걸이 기도공덕 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30 16:17 조회1,746회 댓글0건

본문

턱걸이 기도공덕?

 

손씨가문이다. 부친은 교직에 있었고 부인은 미인형으로 가정주부였다. 아들 둘이 있는데 큰 아들은 사주볼 때 밥이 중국에 있으니 중국어학을 전공하도록 하라고 일렀는데 졸업하고는 중국으로 진출하여 현재까지 그곳에 근무하며 한국에도 자주 왕래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고딩 까지도 공부는 잘 했는데 학마가 들어 시험 때만 되면 학점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인연은 한양대 안산캠퍼스로 가라고 했으나 역시 학점이 미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왕지사 진학기도를 하려면 최대사님 한테 부탁하라고 일러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거의 매일같이 나도 100일간이나 기도에 참석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낮에는 손님상담을 하고 일찍 업무를 마치면 지리산까지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밤 11시까지 정성을 다해주었던 것이다. 이는 신명의 세계를 검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학생 모친은 초죽음이 되어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떨어졌다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뭐라 위로를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나에겐 어떤 확고한 신념이 있었는지라 등록마감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리고 나서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어느 원두막에 올라 수박을 땄는데 수박이 원두막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수박을 잡으려고 했으나 손이 미치지 않아 그냥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수박이 깨지질 않고 넝쿨에 한뼘쯤 매달려서 땅에 닿을 듯 말 듯 걸려있는 것을 보고는 아 합격되는구나 하는 직감이 와서 손군 모친에게 전화를 걸어 등록마감시간이 되면 학교에서 연락이 올 것이니 돈 준비해서 대기하라고 전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5시쯤 되어 오늘 중으로 빨리 등록을 하라는 연락이 학교측으로부터 왔던 것이다. 내가 준비해서 대기하라는 바람에 나를 믿는 분인지라 비행기표까지 예약을 해놓고 대기했다는 것이니 지체 없이 출발하여 그날로 등록을 마치게 되어 잘 졸업하게 된 케이스라 하겠다. 기도공덕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래서 나에게 현몽하여 마감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때 손군 모친이 양복한벌 선사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받지못했으니 내생에나 받을는지 모른다. 급할 땐 무슨 약속도 잘 하지만 막상 위기를 넘기고 나면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복채는 절대로 외상을 하지 않는 법이다. 물론 여러 차례 식사대접은 잘 받았다.

내가 진학생 지도를 하면서 얻어놓은 양복만 해도 양복점을 차리고도 남을 만큼 될 것이나 마음엔 두지 않는다. 학부모입장에서는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랬겠나 이해할 뿐이다. 아마도 내가 양복얻어입을 복이 있었다면 그렇지는 않았겠지 하며 나의 박복함을 인정했다.

 

6

만덕동에 사는 씨 가문이다.

아들이 꽤나 총명하여 공부도 잘 하므로 의대를 목표했는데 예비고사 시험에서 295점은 받아야 고려의대로 진학이 가능한데 그해는 모의고사 시험을 치면 평균 260점 가량이었으므로 감히 의대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모친은 어떻게 해서라도 재수시키지 않고 보내야 한다며 극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여간 최대사님의 원력을 빌어보자고 하여 소개시키고는 나까지 부담이 되어 대사님을 도와가며 기도에 열중이었다. 물론 창익군의 모친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기도삼매에 빠져들었는데, 학점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진학담당 선생님까지도 재수를 권장하던 시기였는데 예비고사 시험일이 당도한 것이다.

 

張君의 말로는 그날 시험지를 받아들자 머리가 새털같이 날아갈 듯 했고 눈이 훤해지며 기분좋게 시험을 치뤘다는 것이다. 더러는 모르는 문제도 찍기로 답안을 모두 작성했다는데 기이한 현상이 생겼던 것이다. 모의고사 평균점수에서 30점이나 더 나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293점으로 결국 고대의대로 진학하게 되었던 것이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기도공덕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분이 당사자와 그의 모친과 진학담당선생님이었을 것이다.

 

기도할 때 장군의 모친이 대사님께 약속을 했다.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되기만 하면 약 4천만원정도 들어가는 불사를 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양복 한 벌 사드리겠다고...그렇다고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지만 하여간 신명을 받들고 사시는 대사님께 약속한 것은 꼭 지켜 주리라 믿었는데 실천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해 결국 학점이 턱도 없이 부족했지만 결과는 합격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장군모친이 홍삼 두 뿌리를 나에게 가지고 와서는 대사님과 두 분이서 나눠드시라는 것이었다. 나야 애당초부터 약속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순수하게 산중생활을 하시는 분한테는 이래선 안 되는데 속으로 생각했지만 나름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강요를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대사님께 모른 체 했더라면 어떨까 했지만 그래도 전해주라는 것을 임의로 묵인할 수 없어 대사님께 말씀드리고 홍삼 한 뿌리를 전해드렸는데 얼굴빛이 파랗게 변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무말씀은 없었지만 매우 기대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張君의 모친이 바로 쓰러져 자리에 눕게 되어 그 후에도 10여년이나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렇듯 신명의 세계와의 약속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몸소 경험해봤던 일화다. 그래서 절대로 실천하기 어려운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주입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비교적 진학시험을 정확히 본다는 소문은 이미 부산바닥에 퍼져있었으므로 가끔씩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으며 학점미달로 재수하게 된다는 말을 하면 대부분이 믿지만 부족한 부분은 기도해서 공을 얻어 보라고 말하면 고연스레 합격될 것을 알면서 기도비용이라도 챙겨보려고 하는가 하는 의심도 사게 되었던게 사실이다.

 

한번은 어느 목욕탕집 진학생이었는데 사주를 보며 한양대 인연이나 3수해서 합격될 것이라고 감명해주었는데 그 당시 삼수를 하자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게 되므로 나더러 기도해서 재수하지 않고 진학시켜줄 수 있느냐며 딜을 하는 부인이 있었다. 목욕탕집이라는 것만 밝힌다.

 

가만히 사주를 보니 기도공덕으로 15점만 올릴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리라고 판단되어 최대사님 한테 기도를 하기로 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한다고 일렀는데 대체로 진학기도 할 때는 대사님이 2백만원씩 받으셨다. 그런데 부인이 혼자서 대사님한테 가서는 내가 말했다는 말은 하지 않고 10만원만 드리고 기도해 달라고 했던 것 이다. 10만원이라면 백일간 촛불 값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신명을 받쳐 정성스런 기도를 하겠는가?

 

상식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부인은 내가 기도하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하자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을 알면서 기도비를 부담 주는가 오해를 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것도 삼수해야 한양대 합격이 되는 운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그해는 낙방하게 되었으니 다시 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치미를 떼고 하는 말이 올해는 떨어졌으니 다음해엔 기도만 하면 진학되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미 마음을 속였다면 신명이 곱게 응해 줄지는 나도 의문이었다. 참신한 기도생활 하는 분을 시험하고 조롱했다면 이는 다시 시도해도 공덕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 2백만원씩 받으시는 기도비를 네배로 올려서 시도해보라고...그러니까 800만원을 가지고 대사님을 찾아가 보라고 말이다.

 

한번 의심하는 사람은 끝까지 의심을 하기 마련이다. 삼수하는데 기숙사 학원으로 들어갈 경우는 당시 약 2천만원정도의 지출이 발생한다고 들었다. 그래도 삼수를 면하는데 800만원이라면 장사꾼 식으로 계산을 해도 남는 장사였을 터이지만 또 나를 의심하여 아마도 200만원을 들고 대사님을 스스로 찾아갔던 모양이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은 내가 대사님과 같이 기도에 참석하면 그 학생은 한명도 낙오자 없이 전원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참석하지 않은 기도는 불발하게 되었던 것이니 내 원력이었는지 대사님 원력이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하여간 그런 현상을 보여줬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삼각산 수련에서 최고산신들을 모두 대좌했고 산신에게 도 열 마리나 사가지고 온 사람이다. 나중에 확인해봤는데 내가 기도를 부탁하여 합격된 학생이 꼭 의 숫자와 같이 열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드린 공덕이 반드시 이뤄졌던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대사님과 기도비를 나눠먹은 것도 아니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대사님 토굴에서 신세도 진바 있고 해서 마음의 빚을 덜고 싶었을 따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인의 생각은 달랐을 것이라는 점 모르는바 아니다. 내가 대사님 수련장에 나타나면 대사님은 나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셨고, 귀빈을 맞이하시듯 반겨주셨으니 응당 내가 보답할 길은 그분의 기도원력이 통하도록 를 보탰던 것이다. 성철재 후학과 난명학회 여러 후학들도 대사님을 직접 만나본 일도 있듯이 나와 대사님 사이에 모종의 거래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는 기도비가 아니더라도 상담만 해서도 풍부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산에서 대사님계신 단계 대성산까지 다니려면 자동차연료비도 많이 들었지만 이에 손톱만치도 연연치 않았던 것인데, 그 후 지금까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내려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나를 소개하는 모든 분들이 자기차로 기름 값 들여가며 문객을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지금은 김천 대야농장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고 부산에서 오려면 도로비포함 최소한 10여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어느 한분 기름 값에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목욕탕 부인의 아들은 끝내 그해에도 낙방하게 되었으니 무엇으로 해명하겠는가? 결국 삼수해서도 한양대 본교로 못가고 안산분교에 진학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부인은 그 후로는 나와의 인연을 멀리한 것이다.

 

또한 아마도 마지막 예비고사가 있던 해였다. 내가 추천해서 대사님께 기도만 드리면 전원 합격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희한 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경제사정도 있고 해서 기도비를 아끼고 싶은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진학생 자모들이 10여명 모여서 자기들끼리 대사님을 직접 찾아가서 저렴하게 기도를 부탁드리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일금 10만원씩을 들고 가서는 집단으로 기도신청을 했던 일이 있었다.

 

200만원을 불사해도 나를 통하지 않으면 효험이 없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10만원씩을 들고 가서 기도를 드리는 것은 너무도 정성을 무시한 처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자기들끼리 기도를 드리는 것은 나에게 비밀이었는지라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기도터니까 여러 사람이 오는가 보다 할 뿐 내가 관심 쓸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유명인사의 부인도 끼어있었는데 내가 재수해야 진학된다고 판단해준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왜냐면 그 당시만 해도 내가 합격이다 하면 말대로 됐고, 재수해야 한다고 하면 제아무리 용을 써도 재수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두가 나에게 다녀간 부인들이었다.

 

그해 자기들끼리 공모하여 기도정성을 드린 학생들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단 한명도 입학을 못하고 재수하게 되었으니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나를 통해서 기도한 학생은 단 한명도 낙오자 없이 합격되었으니 나중에 얼마나 뒷말이 많았겠는가. 상상해보기 바란다.

 

이 무렵 어떤 학생어머니는 기도를 드리다가 잠깐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접시를 들고 있다가 접시를 떨어트려서 깨져버렸다며 한숨을 쉬고 걱정이 태산이었던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물었다. 재수학생이냐? 하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 그 학생은 금년에 합격된다. 라고 말해주니 여러 사람들이 기도공덕이 깨졌는데 어째서 합격이냐? 하는 것이었다. 해몽을 해줬다. 이미 장벽이 높아서 진학을 못해 재수를 하는데 장벽이 깨졌으니 무난히 통과할 것이 아니냐고...정말로 그 학생이 합격됐노라고 대사님께 찾아와서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더라는 것이다. 이분은 진주에 사는 분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부터는 진학기도를 완전히 접고야 말게 되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왜냐면 김영삼 정권 때 입시 제도가 바뀌어서 교차지원이 되도록 했기 때문에 여러 곳에 원서를 제출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능력과 수준에 맡도록 지원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이때부터 진학상담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도 진학상담을 할 때는 무슨 대학에 인연이 있고 어떤 학과를 가야 되느냐 하는 문제만 제시하고 시험점수는 눈을 감게 되었다. 실로 시험점수를 알아낸다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고 머리가 빠지도록 연구해야 하며 혹시라도 결과에 실수나 없었을까 하고 전전긍긍했기 때문이다.

 

진학상담과 기도공덕에 관한 이야기는 수 없이 많지만 이것으로 마치고 기업인 감명실화를 소개하기로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야농장 | 대표 : 차윤득 | 사업자번호 : 607-06-67726 | Tel : 054-437-1032 | | 팩스 : 054-437-1034
주소 : 경북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 559(신주소:대야길 44-109) | 이메일 : daeyablueberry@hanmail.net
통신판매번호 : 제2008-경북김천-0007호
Copyright © 대야농장.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