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修行의 길]門中修學 道通境地 > 지혜의샘

본문 바로가기
즐겨찾기

회원메뉴


농장소식

대야농장 상담문의

080-7000-9988
010-3585-0188
054-437-1032

평일 AM 09:00~PM 20:00

토요일 AM 09:00~PM 18:00

대야농장

지혜의샘 | 100% 국내재배 신선한 야생블루베리 목록

15[修行의 길]門中修學 道通境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3-26 16:46 조회1,337회 댓글0건

본문

15[修行의 길]門中修學 道通境地

 

사연인즉 이러했다. 형님이 돈을 받아가지고 기분이 좋아서 단숨에 집이 있는 함양으로 달려갔는데, 추운 겨울인지라 담요같은 재질로 만든 누더기 코트를 입고는 눈길이 험한데도 힘든 줄 모르고 달려가면서 권련담배(필터 없는담배)를 반쯤 피우다가 불을 꺼서 꽁초를 주머니에 넣었는데 이놈의 담배꽁초에 불이 살아나서 돈이 든 주머니에 구멍이 났고 돈은 어디로 흘렸는지 한푼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오며 찾아봤는데 찾지 못했다고 벽소령 토굴로 선생님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광태가 그렇게 안다며 어째서 자기 주머니 속에 든 돈이 샐 것은 몰랐느냐고 따지러 왔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회고로는 복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니 지니지 못한 것이다. 라고 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다음에 논 두마지기 값을 벌어 주면서 이번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이때 무슨공부를 했으며 어떻게 성명을 가지고 그토록 신비스런 통변을 했을까? 하는 점이 궁금할 것이다.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道房에서는 觀. 慧. 覺. 醒. 通 이런 말들을 쓰는데 우선적으로 자기 본능적 소질과 운명적 자질에 따라 깨닫는 길이 각기 다른데 대략 여덟가지의 도통경계가 있는 것이다.

 

一曰 卜通

二曰 藥通

三曰 針通

四曰 文通

五曰 三生通

六曰 三妙通 (삼보통이라고도 함)

七曰 靈通

八曰 見性通 등이다.

 

각기 영통하는 주문도 다르며 수련방법도 다르다. 누구나 가장 위대하다는 견성통을 원하지만 이는 부처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장안에 작명가로 이름이 알려진 김봉수씨는 전북 임실사람으로 16세때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살이를 하다가 삼묘통을 얻게 되어 이름만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을 알게 되는 신통력을 지니므로 70세가 되도록 크게 이름을 떨친 일이 있으며, 제산선생님은 九靈三精呪로서 문통을 얻으셨으며, 서대문 대현동에 있는 침술사로 유명한 박영수씨는 용문산에서 3년간 기도하여 침통을 받으므로 神針이라고 할 정도로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었다고 한다.

 

삼생통을 얻으면 전생과 금생과 내생을 꿰뚫어 본다는 혜안이 열리는 것이니 이 모두가 선천으로부터 타고난 자성따라 현상이 일어나는 법이니 이런 도통도 이미 전생부터 닦은 바가 있어야만 금생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야 밝히는 바이지만 선생님께서 나에게는 天醫當令에 태어났으므로 藥通呪文을 주시며 공부해 보라고 하셨으나 시간이 없었고 뜻도 없었는지라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좀 더 젊은 시절이었다면 해볼만한 공부였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가 처음 감명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명조만 보면 아픈 사람을 신통하게도 알아냈고 약처방을 내려주면 백약을 써도 효험을 보지 못하던 사람들이 많은 효과를 보는 것이었으나 면허없는 돌파리 의원이 싫었던지라 어느 순간 눈을 감고 말았던 일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후일 소상히 소개될 것이다.

 

약통주문은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수면을 취하며 정진해야 한다. 잠을 많이 자면 泥丸宮(정수리부분으로 옛날 상투자리인데 이곳은 현대용어로 안테나라고도 한다.)의 문이 열리지 않아 회통하지 못하므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다.

 

藥通呪

天靈節靈 願保長生

太玄之日 修氣眞形

五臟神君 各保安寧

神針一下 萬毒潛形

急急如律令 布德天下 萬民救濟

 

이 주문을 하루에 3만번 이상 외우되 자리를 뜨지 말고 먹고 잠자는 것을 잊으며 정진하면 上根氣는 百日, 中根氣는 2百日, 下根氣는 3百日을 수행하면 동의보감의 허준과 같은 혜가 열리게 된다.

 

註解:

상근기=선천에 타고난 팔자가 우선하며, 후천으로는 29세부터 35세까지다.

중근기=선천에 타고난 팔자가 우선하며, 후천으로는 36세부터 45세까지다.

하근기=선천에 근기가 약하게 타고난 사람이며, 후천으로는 46세 이후를 뜻한다.

 

근기가 약할수록 수행이 어려우며 평생을 해도 이루지 못한 분들이 부지기수다. 예를 들자면 성철스님 같은 분은 선천근기가 이미 상근기에 해당하며, 예수나 석가모니 부처님도 상근기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道房에 기웃거리다 보면 평생을 수행한답시고 결가부좌하고 산중에 틀어박혀 아까운 식량이나 축내는 분들이 많은데 현생에 이루지 못하면 내생에라도 이뤄보겠다는 각오로 변을 삼고 있다.

 

내가 아는 몇분의 도인을 잠시 소개하려 한다. 묘하게도 내가 아는 자칭 도인들이 모두 최씨성을 가진 분들인데, 지리산 최대사님, 봉화춘양 각화사골짜기 버섯골에 최도사, 팔공산자락 극락암에 최도인 등이 있다.

먼저 지리산 최대사님은 박경리가 쓴 토지소설의 주인공으로 하동 악양에 갑부집 둘째아드님이다. 일찍 결혼하여 아들 셋을 낳고 잘 살다가 가장 예뻐하는 둘째가 원인모르게 사망하자 저승에라도 올라가 아들을 만나보고 싶다며 지리산 천왕봉 법계사로 들어가 10수년을 수행정진하다가 나름대로 깨달은바 있어 하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분은 어떤 자연의 氣를 받아 눈에서 불이 나올 정도로 매섭게 생겼다. 실지로 고양이를 약 5~6m 떼어놓고 눈으로 고양이에게 기를 쏘아서 여섯 마리나 죽게 하는 실험도 한 분으로 현대판 기인에 속한다.

 

최대사님을 알게된 것은 1986년도 봄이었다. 당시 봉화군 춘양면 예당리 소재 태백산 시루봉아래 참새골에 토굴을 파고 수행중이라고 소개받아 이승수고문과 둘이서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같이 공부하는 제자로 보이는 청년이 있어 물으니 아침에, 오늘은 귀찮은 사람이 찾아올것이라고 하며 나가셨기 때문에 밤새도록 기다려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향이 진주라고 들었으므로 고향에 연고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형제친척들과 전혀 왕래가 없고 단지 누님한분이 계신데 누님을 만나면 거처를 알 수 있다고 하여 전화번호를 물어가지고 늦은 밤 달빛이 요요한 산골짜기를 빠져나와 이른 아침에야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아침먹고 누님한테 전화를 했더니 지금시간에 부산 동아대학교에 친척교수를 만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수소문하여 전화를 했더니 방금 나갔다고 해서 어디로 가셨느냐?고 하니 알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냐? 아니면 승용차로 이동하시느냐? 하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버스터미널에가서 기다리면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부산백화점 뒤편에 있는 터미널로 달려갔더니 도포를 걸치고 상투틀고 수염을 길게 기른 기인행색의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눈에 최대사님인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이했다.

 

만나서 태백산 참새골까지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는 음료수 한병 사가지고 매점에서 나눠마시며 예의는 아니지만 도담이라도 나눠볼 심산으로 말문을 열었는데 대꾸도 않고 바빠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간다는 사람을 어쩌겠는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찾아뵙겠다고 하고 돌아왔는데, 도저히 궁금해서 그분을 소개한 지리산 거림에 사는 조도사를 찾아가 수행담을 자세히 물었다. 천성이 냉정하여 어찌보면 오해할 정도로 차갑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미 태백산 토굴은 알아놨으니 몇 번이라도 달려가면 만날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어느날 택일을 하여 태백산 시루봉 밑 참새골로 찾아가서 만나뵙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훗날 많은 일화를 남기게 됐고, 전생과 내생의 경계를 공부하는데 큰 도움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나에게 있어서는 세 번째 스승이라 할 만한 분이다.

 

최대사님은 천문을 알고 氣를 운용할 줄 아시는 분으로 격물치지에 아주 탁월하게 능한 분이다. 그래서 어떤 순간의 현상을 포착하여 이내 무슨일이 생길지를 아시는데, 가령 수도처에 택시가 한 대 들어오면 3초내에 무슨일로 온다는 것을 읽어내는 분이셨다. 그래서 내가 첫 번째 찾아갔을 때 귀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던 것이다.

 

1990년 이른 봄, 내가 서울에 잠시 머물며 몇몇 문하생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참선수행을 시켜줄 생각으로 5명을 데리고 최대사님이 머무시는 참새골 토굴로 찾아가기로 하고 먼저 답사를 위해 2월 20일경 친구와 동행하여 방문했었는데, 길을 잘못들어 엉뚱한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 최대사님이 계신 것이었다. 깜짝놀라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여쭈었더니 차선생이 길을 못찾고 헤메일 것 같아 마중을 나왔다고 하시는게 아닌가? 동행했던 친구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게 사실이다.

 

그리고는 3월 하순에나 올 줄 알았는데 왜 일찍 왔느냐?고 하셨는데 실로 수강생들과는 3월 22일경 입산하기로 약속한 상태였기에 내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게 사실이다.

 

깊은 산중에는 겨울철이 되면 옹달샘이 꽁꽁 얼어붙어 마실물을 구할 수 없어 해빙이 돼야 토굴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며 앞으로 한달후면 입산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최대사님께 수강생 몇 명을 수행시키기 위해 데리고 오겠다고 양해를 구하니 선뜻 승낙하시는 것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음달에 찾아뵙겠다고 약속하고는 돌아왔다.

 

드디어 3월 22일이 됐다. 몇 달간 수행하며 의식주 해결할 물건들을 챙겨서 토굴에 도착하니 이른 저녁때가 되었다. 저녁을 지으려고 부엌에 들어가보니 들쥐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완전히 쥐 소굴이 되어 사람이 있는데도 이리왔다 저리갔다 정신을 빼놓는 것이었다.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쥐 때문에 어떻게 살겠냐고 불평들이 터져나왔는데 최대사님이 이소리를 듣고는 걱정마라 오늘저녁에 몽땅 잡아주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기인이 그런말씀을 하시니 무슨 수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는 해가 저물어 잠자리에 들게 됐다.

 

대사님은 당신의 숙소인 초막으로 들어가시고 나도 텐트를 치고 자리를 마련했으며 나머지 5명은 토굴방에서 머물게 됐는데, 대사님이 밤에 쥐를 몽땅 잡아버리겠다고 약속하셔서 어떻게 쥐를 잡는지? 궁금해서 날밤을 새며 대사님 처소만 바라봤는데 저녁에 들어가셔서 한번도 나오시질 않았다며 아침에 일어나니 꿍얼대는 것이었다.

 

조반상을 차려놓으니 그제야 대사님이 나와 함께 식사를 하시고는 밥값을 해야 한다며 땔나무를 하러 새끼줄을 한다발 어깨에 걸치고는 나무꾼처럼 숲속으로 가시는 것이었다. 바라보던 문하생 두 사람이 기인의 행색이 이생해서인지? 아니면 존경심에서인지 따라나섰던 것이다.

 

시루봉 중턱에 다달았을 때 잿빛 산새 두 마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시더니 오늘 酉時(오후 5시이후)에 두 사람이 방문할 것이다. 라고 알 듯 말 듯 말씀하시더라는 것이었다. 점심먹기 전에 각각 나무 한짐씩을 해서 짊어지고 하산하여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수련준비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확히 유시에 산림과직원 두 사람이 산불조심과 생나무를 베지 말라는 경고차 다녀간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그리도 많던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는 것을 본 사람이 없으니 문하생들이 얼마나 신기하게 생각했을까? 짐작으로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토굴 바로위에 살모사며 독사들이 우굴거리는 뱀골이라 땅꾼들이 하루걸러 한번씩 뱀 잡으러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지만 대사님의 말씀으로는 우리가 공부하는 지점에서 반경 50m이내에는 독지네나 독사는 물론 해충이 근접을 못할 것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문하생 중에 단 한사람이 계율을 지키지 않고 고기와 술을 좋아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묘하게도 이 청년이 머무는 토굴에만 독사가 베개 밑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놀래서 다른 자리로 옮겼는데도 불구하고 그 청년 숙소에만 뱀이 들어갔던 것이다. 대중의 의견으로는 계행이 안 되는 사람이라 대사님께서 뱀을 보내는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게 됐던 것이다.

 

실로 6개월을 기약하고 입산수행에 들었는데 문하생 전원이 대사님의 신비막측한 도술에 매료되어 힘든 참선수행을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대사님께 매달려 격물치지를 배울 것을 소원했던 관계로 수업료만 내가 받아 챙기고는 무거운 짐은 대사님께 떠넘기게 되었던 웃지 못할 일화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6개월간 숙식에 필요한 생활용품만 공급해주고 나를 따르는 제자 한 사람만 데리고 지리산과 도봉산으로 수행처를 옮겼던 것이다. 훗날 대사님을 추종하던 문하생 전원이 공부를 포기하고 귀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수 십년을 수행으로 터득한 도술을 하루 아침에 얻으려 했으니 일컬어 道賊(도를 훔치다)이라 한다.

 

태백산에는 유난히도 벼락이 많이 친다. 장마철이면 하루에도 몇차례씩 천둥벼락을 치는데 그럴때마다 최대사님은 은가루나 쇠가루를 한 스픈씩 식초에 타서 마시고는 벼락이 떨어지는 밖으로 나가면 벼락이 소멸되는 실험도 수차에 걸쳐 보여주시곤 했다.

(쇠톱으로 쇠를 자르면서 나오는 가루)

 

보통사람이라면 쇠가루에 식초를 타서 반스픈만 먹어도 치사량이 되는데 대사님은 아무렇지도 않는 것이다.

 

그해 늦가을, 문하생들이 대사님에게 더 이상 배울 수 없다고 판단되어 해산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일부 못난 친구는 대사님이 가르쳐 주지 않아 배우지 못했다고 불평도 했다는 후문이 나돌았다.

 

그 후 대사님을 자주 만나면서 쥐를 쫒아낸 비술과 반경 50m내에 해충이 범하지 못하게 하는 이치를 알게 되었고, 필자의 막내동생을 수련시키게 되는 기회가 있었는데 100일간의 정진 끝에 두터운 유리 재터리를 눈으로 격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 사실이 있었으나 득도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점에 관해 소개할 예정이다.

 

다음호에 계속...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야농장 | 대표 : 차윤득 | 사업자번호 : 607-06-67726 | Tel : 054-437-1032 | | 팩스 : 054-437-1034
주소 : 경북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 559(신주소:대야길 44-109) | 이메일 : daeyablueberry@hanmail.net
통신판매번호 : 제2008-경북김천-0007호
Copyright © 대야농장.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