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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修行의 길] 霽山門中 入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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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야 작성일12-02-12 16:48 조회1,4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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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修行의 길]霽山門中에 入門하다.

 

그래도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억력을 가지고 계셨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훗날 仁山선생과의 이야기 중에 여러차례 한 말이 있는데 인산선생의 말씀을 빌자면 한번 왔던 사람은 언제와도 명조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모두 기억하신다는 것이다. 또는 배우자나 자녀의 인연까지도 모두 기억하셨다며 그 집안의 족보까지 꿰뚫어 보셨다는 말을 들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내가 겪어본 결과로 인산선생의 편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선생님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직업을 아셨으니 혜가 밝았던 젊은 시절에야 말할 나위가 있었겠나 싶은 생각이다. 매일 같이 감명한 중에 중요하게 기억해 두어야 할 점은 빠트리지 않고 지도해 주셨다. 그런데 그후 2년이 지난 병인년 선생님과의 정식토론을 하면서 내가 심하게 반론을 제기했던 일이 있었는데 가르치실 때는 반드시 핵심을 빗겨서 지도해 주셨다는 것이다. 직통로선이 있는데도 꼭 우회도로를 가르치셨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선생님의 이해방법상의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렇게 이해를 한 것인지는 아직도 정답이 없지만 결론적으로 난명학의 근간이 된 것은 丙寅년에 선생님과 열띤 토론으로 얻어진 결과로서 정립된 이론임을 분명히 하는 바이다.

 

실로 선생님이 지도해 주시는 이론대로 공부를 하려면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쉽게 터득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낙산선생도 십수년간 선생님 모시고 수학을 했지만 감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선생님의 지도방식을 깊이 분석해 보면 이론서를 많이 본 사람들은 더욱 헷갈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해와 물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쉽게 깨달을 수 있고 어느 틀 속에 넣으면 정답이 없게 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곧 불규측속의 질서이니 자연이기의 원리라 하는 것이며 형이상학의 특성이 그러하듯 명리의 핵심적 요소가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세월이 지나가면서 검증을 해보지 않고서는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핵속에 중성자의 다른세계가 있는 이치와 맥을 같이하는 이론이다. 송아지는 어미 소 우는 소리를 배워서 음매 하고 우는가? 아니면 송아지의 본능에 의하여 우는 것인가? 송아지한테 개짓는 흉내를 내라고 해도 멍멍거리지 않을 것이다. 강아지더러 닭 우는 흉내를 내라고 한들 꼬끼오 할 수 있는지? 각기 타고난 재능이 있고 자성과 본능이 있는 것이니 하물며 인간이랴.!

 

동생 이름이 현국이다. 동생과 같이 문중수학에 전념하며 과중한 업무에도 피로를 잊고 거듭되는 일과를 차질없이 수행하며 선생님을 보필하기에 최선을 다했는데 간혹 시험문제를 내주시곤 했다. 접수할 때 예비상담하는 것을 선생님이 모르실리 없다. 아시면서도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씀이 없으셨다.

 

소위 단골고객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생님과 오랜 친분을 가지고 있는 문객들도 많이 있는 것이니 그런분들이 나의 행위에 대항 우려하는 마음도 있었으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심을 가지고 선생님 따라온 것이 아니므로 그런 일에 구애받기도 싫었고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소문이 사모님댁까지 전해지게되어 사모님이 선생님께 차선생이 당신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이니 조심하라는 경고장까지 내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이 그해 12월에 현실로 나타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에 대해서는 한 치의 우려도 하지 않았다. 修學에는 언제나 마장이 낀다는 이치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시 스승이라면 자기보다 훌륭한 후학이 배출되기를 소망하는지라 선생님의 심중은 흐믓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선생님께서 지도해 주신 통변이론을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한다. 모두를 소개하면 완벽한 제산문중이론이 공개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해를 돕고자 하는 의미에서 일부만 배려하는 바이니 양해 바란다.

 

어느날인지는 확실한 기억이 없지만 포철 박태준회장과 탤런트 정진씨와 몇몇 탤런트를 포함하여 풍산금속회장 등이 술자리를 함께 하였는데 박회장은 서울에 있을 때 선생님과 몇 번 만나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서 구면이었고 풍산금속 유회장은 초면이었으며 정진씨 및 탤런트도 초면이었다.

 

박회장이 정진씨 보고 하는 말이 “여보시오, 천하가 이 손안에 있소이다. 했는데 설명좀 해 주시겠소” 하고는 말을 건넸다. 정진씨는 주눅이 든 사람처럼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자세도 허리를 꾸부정하니 납작 엎드린 모습으로 매우조심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당시 MBC에서 설중매 드라마에 출연하여 스타덤에 올라있는 탤런트로서 인기가도를 달리는 사람답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회장을 비롯하여 풍산금속 유회장은 전 해군제독을 지낸 장군출신이며, 제산선생님은 박회장이 스승이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나까지 있었으니 나는 누군지 몰랐겠지만 가진건 없어도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버티고 앉아서 박회장이 술잔을 권해주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나누곤 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때 손안에 천하가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기에 아무말 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정진씨를 보고는 박회장의 질문에 화답할 겸 “손안에 천하가 있는 이치를 아십니까? 하고 질문을 하니 입속말로 ”아~~유 모릅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정도의 배역을 소화하려면 손안에 천하가 있다는 이론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며 원한다면 알려주겠다고 하자 고맙다고 대답은 했으나 원체 바쁜 사람이었는지라 시간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술잔이 몇 순배 돌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각기 자기가 경험했던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거나하게 취해갈 무렵 풍산금속 유회장이 선생님한테 자기 사주좀 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박회장이 선생님을 바라보며 무언중에 유회장의 요청을 들어주라는 암시를 보내는 눈치였다.

 

선생님은 술잔을 비우며 유회장 사주를 물으려는 눈치가 보였다. 순간 나는 선생님의 체면을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있는 분들의 부탁인 만큼 선생님이 거절하기엔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회장이 전 해군제독을 지냈고 현재 풍산금속 회장일지는 모르지만 주석에서 선비의 자존심에 대한 예의는 지켜줬어야 했다고 회고한다.

 

아무리 싸구려 점장이나 술객이라 할지라도 인생의 중대사를 어찌 주석에서 논할 수 있으랴.? 그래서 내가 제지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니 “죄송스런 말씀이나 인생의 소중한 운명자문을 구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이런 술자리에서 가치없이 논할 수 있겠습니까? 하며 정중히 거절의사를 표한 뒤, 어제라도 제산정사로 방문해 주신다면 소인이 잘 모시겠습니다.” 라고 단호한 어조로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두 번다시 요구를 할 수가 없었다.

 

사실상 박회장은 제산선생님과 주석에 자리할 때마다 동석한 인사들의 사주를 봐주게 했던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만나기 전에는 박회장을 만나러 가실 때마다 인산선생이나 낙산선생을 데리고 가시곤 했다는 것을 낙산선생께 들어본 기억이 났다.

 

이때 박회장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차선생이 제법이야” ‘우리 회사에 부장급 백명보다 낫다“ 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으로 희석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평소에도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지론이 있었다. 비록 세상에서 천시되고 있는 운명학자가 될망정 학문을 천박스럽게 취급받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이 실천되고 있는 사실로 운명을 몇푼의 돈 때문에 가치없이 봐주거나 묻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로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 주석에서 사주나 봐준다는 것은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을 수행하면서 몇 차례 주석에서 운명을 논해주는 일이 있었다는 점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이때 거나하게 취기가 돌 무렵 박회장이 정진씨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인천이라고 했다. 그러면 소원이 무엇이냐? 고 다시 물으니 인천 고향에 소극장 하나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고 하니까 박회장은 그 자리에서 쾌히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정신씨의 생년월일시를 알아가지고 정사에 와서 선생님과 연구해 보았다.

 

乙壬己辛

巳戌亥巳

 

癸甲乙丙丁戊 1운

巳午未申酉戌

 

프로필을 보면 살아온 길을 알겠지만 동국대 연영과를 졸업했고 인천출생으로 설중매 드라마에 출연하기 전까지 탤런트로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설중매에서 한명회역을 맡으므로 일약 대 스타가 되었던 분이다.

 

그러나 그 후로는 특별하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니 역시 운로가 여의치 못했던 탓이다. TV화면과 매스컴에 암합을 하므로 탤런트로서 평생 직업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겠다. 제산학의 물상이론으로 보면, 巳가 화면이며 乙이 마이크며 戌은 무대가 되고 辛이 방송국이며 亥는 연기로 볼 수 있다.

 

시상상관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으로 분석되나 제사선생님은 己土정관이 기신이며 시상상관 을목이 희신이라 설명해 주셨는데 한참동안 이 문제로 헷갈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문제로 많은 술객들이 터득을 못하여 제산선생님 단독의 학문인지라 세상에 없는 이론이라며 “붙이기 박사” 자기 멋대로 둘러대기만 하면 맞아 떨어진다 하며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己土가 격국으로서 갑을 대운에 불발하다가 오화운에 己土정관이 득록하므로 한명회라는 주역을 맡게 된 것인즉 어찌 을목이 희신이겠는가? 후일에 선생님의 의도를 짐작하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로 丙寅년에 심도깊은 이론전개가 되었던 것이며 이런 일이 있은 후 제산문중의 후계자로서 지명받게 되었던 것이니 선생님의 마음속을 파헤치는데 성공했다 할 수 있다.

 

선생님의 이론으로는 지나온 운로를 명확히 대변하기 어렵다. 즉 己土正官은 午火에 得祿하고 酉金에 長生한다. 午酉가 없어 부득이 巳中戊土에 根하므로 巳는 곧 天乙貴人이며 극장 영화관 영상이 되는데 巳亥충하였으나 辛巳가 암합하니 구제가 되었던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己土가 格局이 되어 酉金운에 長生하므로 연영과에 진학했던 것이다.

 

다음명조 통변내용

 

戊乙己丁

寅巳酉亥

 

편인격에 用印하지만 印은 日支沖하며 원거하고 調候用하는 고로 食傷을 用한다. 食傷火는 剋官하므로 무례지상이다. 라고 통변해 주셨는데 이 문제도 상당히 먼 길로 우회한 통변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丁火食神은 음식인데 亥水와 暗合을 하고 있으니 亥水는 논이라 논위에 쌀꽃이 피었으니 쌀장사로다. 하였는데 사실상 그 당시에는 쌀장사를 하다가 그 후 침술을 배우고 태고종에 입문하여 승려가 되었더니 어느새 한의학을 공부하여 지금은 경동시장 주변 한약건재상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한의원을 경영하고 있다.

 

한약도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면 궤변이라고 하겠지? 亥水正印이 선비가 되므로 지식을 이용한 음식장사라고 하면 어떨까? 하여간에 정화와 해수가 길신인 것 만은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화가 뭣 때문에 필요한 존재가 되었는가를 설명해 주셨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나 단지 해수와 암합을 해서 그렇다고 하였으니 만일 해수와 암합을 하지 않았다고 할 때 어떤 통변이 존재할 것인가 말이다.

 

수도 없이 많은 통변의 이치에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는 혼란이 생긴다면 머리 나쁜 후학들이 어찌 올바른 수학을 했겠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세부적이 이론은 언제다 나의 몫이 였으니 한가지 이치를 가지고 열가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자연이기학에 통달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위 명조를 감명하실 때 유금은 서방금이니 호북출생이라 전북이 고향이며 유금은 다시 寺鍾이니 불문출이라 했는데 이점에 대해서는 이론은 맞지만 상당히 황당무계한 통변이었으나 적중했던 것이다. 전북 금산사 바로 아래동네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에는 금산사 학생신도회장을 했다고 하니 맞는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몇 년간 태고종 승려가 되었던 경력이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례지상에 대하여는 아직도 의문이다. 이 사람을 상당기간 만났지만 무례하다는 인상은 한번도 받지 못했다. 이렇듯 팔자에 그려있는 물상에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며 타고난 인연을 멀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분의 인생역정을 보면 사주팔자속에 있는데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註解: 편관격에 식상용이 아니고 해수가 용신이었다는 점은 의심이 없으나 식상용이라고 한 것은 심각한 혼란을 야기시켰다. 이후 2년이 지나서 깨우침을 얻고 선생님과 단독 토론을 하게 됐던 것이다.

 

壬庚己丁

午申酉丑

丙乙甲癸壬辛庚

辰卯寅丑子亥戌 (女性)

 

양인격으로 보셨다. 군주 경금으 강금이라 병화를 희하고 정화를 희신으로 한다. 坤命은 양인격에 정화를 희신한다. 부부궁에서는 정화용하여 정임합으로 임신생을 만난다. 부성이 길하면 己巳생을 만나 해로하는데 정화부성이 약하고 일지망신이 되어 부덕이 없으니 임신생을 만나서 계해년에 상부하였다.

 

계운과 축운에 부성이 몰인데 어찌하여 갑운 계해년에 상부냐? 정화의 의지처는 기토인데 기토를 갑목이 합하니 정화가 고립되어 계해년은 역마상관이 되었으니 상부한 것이다.

 

木이 재산인데 없다. 없는 것을 희구하여 木業이다. 無木이면 다 목업이냐? 壬水食神을 용하기 때문에 목업을 하게 된다.

 

자손궁에서는 신중임수가 여식이고 축중계수가 아들이라 女勝子弱하여 1자 2녀다. 계묘생 장녀가 왔고 을사생 차녀가 왔다. 장자는 경자생이다. 命中에 木 財星이 없으면 면대비소하다. 신왕하고 식신이 약하고 무재하니 재약하여 노재의 복이다. 시에 도화욕이 딸과 함하여 있으니 슬하에 딸이 기생이다.

 

이상과같이 통변을 가르쳐 주셨다. 여기서 인과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질문하려 했지만 이것은 내가 연구하여 터득해야 하는 몫이었던 것이다. 위 내용 중 비판적인 시각에서 선생님과 열띤 토론이 있었지만 생략한다.

 

난명학을 연구한 후학은 위 강의내용을 보면서 멀리 우회하였다는 점에 충분한 인식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절대로 직선적인 지름길은 강의 내용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명리를 힘들게 깨우치신 분들은 절대로 쉽게 주려 하지 않는 법이다.

 

註解: 위 명조를 양인격으로 定格하신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양인격의 구성요건에 전혀 해당이 안 되었으나 단 사주에 양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혼선을 일으킨 것이며, 假正印格에 정관이 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나 초년운에 본연의 격조를 갖출 수 없는 생활고로 인하여 만부득이 상전 규수가 머슴과 결혼하여 살게 된 것과 같은 운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생활이 안정되면서 제격을 찾게 되는 운을 만나자 이별이 온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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