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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修行의 길]霽山門中 入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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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2-06 16:48 조회1,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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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修行의 길]霽山門中 入門하다.

 

1984년 8월 9일 제산선생님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왔다. 저녁 무렵 도착하여 중앙동 동광여관에 짐을 풀었다. 저녁식사는 樂山선생을 불러 나와 相面인사를 시키고는 같이 광복동 일식집으로 가서 반주를 곁들여 푸짐하게 먹고 마시며 과거 낙산장과 공부하실 때를 회상하시는 듯 자정이 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돌아왔다. 제산선생님이 부산에 처음 사무실을 낼때부터 낙산선생을 알게 된 사이로서 장차 이분에 대한 소개도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다. 자정이 되도록 두 분이서 정담을 나누며 오랜 세월 상담하면서 기이했던 일화로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화기애애했던 시간이었다.

 

10일 아침이 밝았다. 7시에 기상하여 어느 해장국집에 가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오자 8시 반경부터 상담 받으려는 손ㄴ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부산ㅇ 내려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다렸던 문객들이 20여명 몰려온 것이다. 이때 나는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오후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는데 어떻게 소문을 듣고 왔는지? 물론 도착했을 때 몇 분들이 인사차 다녀가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찌 알고 몰려오는 것일까?

 

그만큼 부산지역에 제산선생님의 명성이 알려졌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오래동안 대중상담을 쉬다가 이제 새로이 대중상담을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고정 사무실도 아닌 여관방에 임시자리를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광고전단을 살포한 것도 전혀 아니다.

 

그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분이었나? 아니면 神明에 통달해서 그럴까? 아니면 내가 경험해본 바와 같이 天貢과 같은 의미일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업무가 바쁘다 보니 이런 문제는 훗날 생각해보기로 하고 뒤로 미뤘는데 몇 개월간 선생님을 수행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함께 수행했던 후학들도 선생님께서는 신이 들린 분이다. 라고 할 정도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가령 오늘은 쉬겠다고 하시면 그날은 문객이 찾아오지 않았고, 오늘은 상담을 하겠노라고 말씀하시면 새벽부터 대문앞에 줄을 서곤 했던 것이니 이때의 의문은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풀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선생님과 오랜 세월 함께 한 분들이라면 누구나 주지하는 바이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기다리는 문객들의 생년월일시를 먼저 온 순서대로 감명카드를 실수없이 작성하였다. 짧은 기간이나마 신촌에서 상담을 해본 경험이 있었고 선생님의 감명방식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었다. 생일하나 잘못기재하면 엉뚱한 팔자를 봐주게 되는지라 이러한 asn제는 선생님께 지적받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신경을 썼던 것이다. 그리고 글자하나라도 잘못 기재하여 적중도가 떨어진다면 선생님께 큰 누를 끼쳐드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였으므로 과거에 체험했던 실수를 교훈삼아 아주 자연스럽게 신중을 기했다.

 

감명기록 카-드 작성할 때 흘림체를 써서는 안 되었다. 선생님의 성격도 그러하거니와 나 자신도 분명한 것을 원칙으로 생각했으므로 정서체로 써야 했는데 숙달이 되지 않아 많이 더뎠다고 기억된다. 나는 언론계에 있을 때 주로 속기를 했던 습관이 있어서 빨리 쓰려면 얼마든지 쉽지만 正書體는 많은 노력과 숙달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체로 한 사람의 명조를 카-드에 작성하려면 약 5분정도 소요되는데 선생님은 나보다 빠르게 카-드를 써내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감명한 기록지를 보면 수만장에 해당하지만 한결같이 정서체로 또박또박 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산성사에서는 절대로 초서체의 흘림글씨는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20여명을 모두 접수하여 감명지를 작성하고 나니 11시경이나 되어 감명이 시작됐는데 중간에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는 오후 5시경에 상담을 마치게 되었으니 한 사람 평생사주를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0분 정도 걸렸다. 선생님은 흥망성쇠으 인생운로를 불러주셨고 나는 감명지에 부르는데로 기록하는 것이다.

 

한 여름이 되어 날씨는 무더운데 선풍기는 있었지만 종이가 바람에 날려서 대기손님들만 틀어주었고 당시 에어콘이 설치된 여관들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손바닥과 등줄기에는 땀히 물 흐르듯 줄줄 흘러내렸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글을 쓰자니 두툼한 방석은 깔고 앉았지만 엉덩이가 백이고 하품과 졸음도 오며 담배도 피우고 싶고 해서 가끔씩 일어나 죄 없는 화장실만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고 일어설 때는 선생님이 직접 쓰시기로 하면서 하루일과를 마치게 됐는데 대필서기를 한다는 것이 생각같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힘든 노동은 아니었지만 경직된 자세로 꼼짝 못하고 앉아서 어른 밑에서 글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나는 참선수행도 해봤고 불경을 사경할 때는 5개월 정도 문고리를 잡아보지 않고 견뎌냈던 사람이지만 대필이라는게 내 맘대로 하는게 아니요 선생님이 부르면 즉시 기록으로 써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었지 않았나 싶다.

 

업무를 마치고는 곧 밖에 나가 저녁식사를 하고는 여관방에 돌아와서 선생님과 단 둘이서 문중비전을 공부했다. 밤 늦도록 자연이기에 대한 이론과 오행의 묘용 및 문중비전의 물상론 신살활용 등에 대하여 낮에 감명하면서 검증했던 점 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는데 나는 선생님의 기억력에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기억된다.

 

낮에 20여명의 문객을 상담했는데 명조를 감명한 순서대로 모두 써내시는 것이었다. 한 두사람도 아니고 스무명이 넘는 고객의 명조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기억하시면서 통변했던 이치를 소상히 가르쳐 주셨던 것이니 선생님께 자연히 숙연해 졌던 것이다. 나도 기억력에 있어서는 한번도 둔하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날 선생님을 뵈면서 자만이었다고 자책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당시만 해도 나로서는 제산선생님 만큼 존경스럽고 위대해 보였던 일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여담으로 선생님께 기억에 대한 말씀을 나눈 일이 있었는데 말씀하시기를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조선시대의 저명했던 인사 및 중국역사의 인명과 명조 등 약 6만여조를 기억하신다고 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놀라움이었다. 나 자신도 비교적 메모없이 기억으로 모든 학문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있었기에 선생님께 배운 자연이기학을 노트에 기록하지는 않고 이해로 터득했던 것이다. 배운 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남의 학문을 답습하는 정도며 자신이 이해를 해서 소화시켜나가야 내 자신의 학문이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도 수년간 공부하며 상담했던 많은 사람들의 명조를 거의 잃어버리지 않고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 선생님에 비교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평소에도 나에게는 전화번호부가 없을 정도로 머릿속에 메모리 해두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 배운 학문의 이치를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고 즉흥적으로 필요에 의하여 기억을 더듬어 꺼내 쓰고 있는 실정이다.

 

관상학을 공부할 때 남들보다 앞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강의시간에 노트필기하는 시간들을 허비하지 않고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 메모리를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를 듣고는 집ㅇ 와서 그 내용을 정확히 메모할 정도로 기억에 총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자만이 선생님을 뵈면서 숙연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로는 선생님 앞에서 아는 소리를 거의 하지 않았고 시험대에 오를 때와 질문에만 소신을 말할 정도로 修學에 열중했다. 낮에는 졸음이 오고 방석이 자갈밭 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늦은 밤이었으나 공부할 때는 정신이 맑았고 피로나 졸음은 물론 오히려 생기가 솟구쳤던 것이다.

 

감명하실 때 통변에 의문이 있던 것을 질문하려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미리 깨우쳐 주시므로 의문이 풀리게 되었고 그 당시만 해도 자연의 이치는 나름대로 깨달았던 부분들이 있었으므로 이기학의 이치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도봉산에서 수도하시던 김영식도인과의 인연으로 이기학에 대한 상식은 미약하나마 있었고 금단결 황정경 소녀경은 물론 황제음부경 등의 자연이론에 귀가 익어 있었으며 더욱 상학의 자연관찰학에 이치를 충분히 이해하던 터였으므로 문중의 이기학을 깨닫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께서도 빠르게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나에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하루 밤 사이에도 상당한 이론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자연을 알면 모든 이치는 하나로 통달한다 라고 하였다. 만법귀일은 곧 모든 법칙이 하나의 이치에 있다는 뜻도 된다. 시작을 알면 끝이 보이는 법이다.

 

 

선생님께서 깨달으신 이기학의 기초는 우선적으로 간지의 올바른 이해에 있었다. 가장 기초적이며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오행과 간지에 심오한 신비가 숨어있었던 것이니 글자로 익히면 일생을 다 바쳐도 얻지 못할 氣기 있었던 것이다. 역시 높은 빌딩을 세우려면 초석이 탄탄해야 한다는 진리를 숨소리로 느껴보는 순간들이었다. 요즘 세속말로 바보 도트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도 하였다. 순간 순간 아~하~~하며 감탄하는 소리가 내 귓전에 들리는 듯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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