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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修行의 길]海東公子 霽山先生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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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2-04 16:49 조회1,5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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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修行의 길]海東公子 霽山先生을 만나다.

 

부인이 가출한 주인공

어느날 부인이 가출해서 육효점으로 신비한 통변을 보여줬던 이야기의 주인공 이모씨가 찾아와서 제산선생님과 함께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께 정식으로 평생사주를 보게 됐는데, 그때까지 부인이 돌아오지 않아서 백방으로 마누라 찾으러 다니다가 더위에 지쳐 있을 때였다.

◆註:육효점이란 주역의 팔괘를 8제곱하여 64괘상을 다시 6乘하고 384효로 확대하여 그날 그날의 시시각각 변하는 氣相을 예측하는 이치로 이해하면 된다.◆

 

참고로 남자의 부친은 일찍 작고했고, 모친이 여관업과 다방을 경영하며 살고 있었으므로 모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던 중이었는데 처는 다방을 경영하다가 외간 남자를 알게 되어 바람이 났던 것이다.

 

그의 모친은 며느리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지만 남편은 비록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 해도 매우 사랑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인은 다방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정과 사랑이 무르익어 아들을 잉태하게 되자 결혼까지 하게 됐던 사연이 있는데 인물이 그런대로 귀엽게 생겼다. 당시 부인의 나이 27세였으니 바람이 날만도 했다고 생각된다.

 

o己丙甲

o丑子午

 

時는 기억이 없지만 명조는 위와 같았다. 통변의 핵심은 과연 부인이 돌아오겠느냐 하는 점과 해로할 수 있는냐? 하는 점이었다. 당시 상학으로 내가 분석했던 내용은 그해 9월에 돌아올 것이나 신촌에서 살면 다시 가출할 것이고, 강서구 화곡동으로 살림집을 옮겨주면 자식기르며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으며, 그의 모친이 방문했을 때도 들어오거든 화곡동으로 가서 살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아들 앞에서 약속했던 것이다.

 

지금의 인과법으로 보면 子水편재격에 戌生을 만나면 忌神인연이 되어 해로를 못한다고 했을 것이나 그 당시 상학의 이치로는 인과법까지 연구가 안 된 상태여서 단지 남편의 상만 보고 서쪽에 안정할 수 있는 瑞氣가 비쳤기에 이러한 통변을 하게 됐던 것이다.

 

제산선생님의 감명통변에서는 戊戌生처는 해로인연이 아니다 라고 단정하며 겨울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다시 이별하게 된다고 했던 것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자는 낙심천만했던 기억이 난다.

 

육효점단으로는 9월에 돌아올 것이라고 하는 말에 위로를 삼고 기다리던 사람이 이제는 희망조차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 후 내가 부산에 내려왔으므로 귀가한 것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해 겨울에 서울에 올라갔다가 궁금해서 알아본 결과 정확히 9월에 귀가해서 모친이 강서구 화곡동에 집을 마련해줘서 그때까지는 잘 살고 있다는 것이었으니 상학의 이치도 놀랄만큼 적중했던 것이다.

 

그 다음 丁卯년에 내가 미국에 다녀오다가 김포공항으로 입국하여 신촌에 있는 대왕호텔에서 숙박하게 되는 기회가 있어 확인해 본 결과 그때까지 가출하지 않고 화곡동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명리학을 연구할 시기에는 어떤 문제점이던 의심되는 분야는 꼭 확인절차를 거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가지고 상당히 고민했던 것인데 난명학에서도 무술생과는 인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연분이기에 더욱 그러한데 지금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통변상 어떤 문제로 부부인연을 맺어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좀더 깊이 삼차원의 통변을 찾아보면 무술생과의 부부인과가 다른곳에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상학에서는 분명히 해로한다고 판단했던 것인데 사주학으로는 해로여부가 1차원적 통변으로는 불가했던 것이니 어디서 문제를 찾아야 하느냐는 점이다. 子月 己土는 격국이지만 子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해답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子月己土를 보면 丙火가 있을 경우 生秦死楚한다는 것이다.

 

즉 子水偏財(사업)를 버리고 丙火(편안히 앉아서 대접받는 뜻)를 따른다는 의미로 통변해야 된다는 뜻이다.

 

(註:편재는 일터며 재물이니 노력하여 재물을 쟁취하는 성분이며, 병화는 어른들에게 받아먹고 편하게 산다는 뜻이니 정 반대되는 이치로 해석한다.)

 

그 후 己日 子月생을 상당수 검증해본 결과 거의가 丙火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정화가 있을 경우와는 다르다. 그런데 李某씨의 경우는 갑오생으로 오화가 모친성인데 모친의 사업을 물려받았고 모친의 덕으로 살아가게 됐으므로 모친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므로 甲午戌로 삼합인지라 戌生을 좋아하게 됐는데 戌生역시 모친의 인연으로 채용되어 눈이 맞았던 것이니 3차원의 통변속에 해당하는 부부인연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모친이 별세하면 사정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처에게 사업을 시키지 않고 자유시간을 충분히 주어 살림만 살게 한다면 무난히 해로 하게 된다고 판단된다는 점이다.

 

子月己日은 편재격이면서도 丙火가 있는 경우엔 사업으로 가지 않고 공직이나 교직 연구직으로 선비의 삶을 살아갔고, 어느 부인의 경우를 보면 子月己日생이었는데 사업을 하지만 부산 진시장 2층에서 丙火따라 비단포목상을 하고 있었으니 木官이 용신이라서 비단포목이요 병화로 개화하는 이치로 2층이 되며 따스하고 화려한 업종으로 통변이 존재한다는 것이니 생진사초는 아니라 할 수 있으나 丙火를 따랐다고 해석 할 수 있다.

 

위 경우는 甲木이 用神이므로 甲木의 自坐 午火와 삼합을 하므로 이별이 아니라는 통변이 존재하게 되는데, 단 子午沖에 子丑合을 하였으니 丑月에 子水合은 吉하나 子月丑合은 羈絆(배반)이 되므로 丑戌刑破하여 子水를 구제하는 이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각도에서 통변을 구해보면 子水는 물질사업 재산이며 格局인데 戌生을 만났으므로 사업을 돕지 못하니 格局을 파한 이치며, 다방과 여관을 경영하려면 며느리가 도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老母와 남편이 경영하는데도 부인은 別家에 자유로이 살고자 함은 남편의 가정환경에 도움이 안 된다는 통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중살림을 하려면 경제적 지출도 많아질 것이니 결과적으로 남편을 돕지 못하는 消耗性의 인연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업환경으로 와서는 견디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고 볼 때 일차원적 통변에서는 상학이 더욱 적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註解:

格局=나라없는 백성이 없듯 개인마다 마음속 고향 즉 주체성을 의미한다.

用神=나라에는 수상이 있듯 개인의 직업관이며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가는 정신력이며 노려이라 할 수 있다.

忌神=격국이나 용신을 방해하고 공격하는 흉신으로 기신이 많으면 평생 불성한다.

生秦死楚=진나라에서 태어나 초나라에 가서 록을 먹다가 죽는다는 의미로 자기나라를 버리고 타국에서 뿌리내리며 사는 인생을 뜻함이니 본연의 天職을 버리고 이단의 길을 산다는 뜻.◆

 

육효의 대가 김모 선생의 이야기

◆註:육효는 주역의 占斷학으로 제갈공명과 소강선생이 통달했던 역사가 있다. 순간순간 발생하는 현상을 그야말로 神과 같이 알 수 있는 점단학으로서 과학적인 해석으로는 中性子를 분해하는 이치에 비유할 수 있다.

소강선생이 외출에서 돌아오며 육효점을 보니 대문위 대들보에 도둑이 숨어있는 것을 알고는 갓을 쓰고 들어오면서 “梁上君子(대들보 위에 있는 도둑놈)는 물러가라” 하니 도둑이 놀래어 갓 위에 눈이 달렸나 하고 도망쳤다는 고사가 있고,

또한 제자와 나들이 하던중 해가 서산에 저물어 주막에 들어가 주모더러 먹을 것좀 내오라고 하자 항아리에서 밀가루를 꺼내가지고 급히 나가는 것을 본 제자가 점단을 했는데 칼국수가 나오겠다고 하자 소강선생왈 수제비가 나올 것이다. 라고 했는데 잠시 후 수제비가 나왔다는 것이다.

 

제자가 묻기를 점단에는 뱀사자가 동했으니 당연히 뱀 닮은 국수가 아니었냐고 하자 소강왈 뱀도 어두워지면 또아리를 틀고 잠자리에 들게 되니 곧 둥그런 수제비가 아니겠느냐? 했다는 고사가 있다.

 

이는 현실상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치다. 같은 학문이라 할지라도 제반 정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니, 가령 한국에서 재벌이 된 분의 사주팔자가 북한에서 살았다면 과연 재벌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일맥상통하는 이치다. 수도 없이 많은 재밋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다 소개 못하는 점 이해 바란다. ◆

 

육효의 대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 분으로 10대부터 술업을 했다고 하니 사계에서 원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육효를 신모씨 한테 작괘법을 수강했으므로 김선생에게는 사사하지 않았지만 통변의 이치는 사실상 김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자주 만나 茶飯도 나누며 육효통변의 매력이 흠씬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만날 때마다 대접은 내가 주로 했다. 김선생께서는 부인을 사별하고 5남매의 자녀를 거느린 분으로 생활이 그다지 넉넉지는 못했다. 오랜세월 術業에 몸담았으면서도 경제적 기반을 안정하지 못한 분이니 이것도 타고난 팔자탓이 아닐런지.

戊己辛辛

 

辰卯丑未

 

제산선생님은 폭주는 아니나 애주하셨으므로 거나하게 취기가 돌 무렵이었는데 부산에 따라오면 밥벌이는 시켜주겠다고 하시므로 내가 부산으로 내려왔을 때 백모씨와 더불어 자주 부산에 들려 제산학의 비법을 배워보려고 했지만 평생을 사주학과는 거리가 멀었고 육효만 연구하던 분인지라 사주학에 매력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단지 육효에서도 물상통변이 많이 적용되므로 제산학의 물상이론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므로 자주 나에게 부탁하여 물상비전을 원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물상론을 드렸지만 사주학의 자연물상론과 점단의 格物致知를 최선으로 삼는 육효에서는 그다지 적중이 안 되었던 것이니 여러차례 부산에 드나들며 이모씨(난명학회 전 고문)도 만나게 되었고 단시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통하다고 할 정도로 실력발휘는 했지만 정착은 하지 못하고 떠났다.

 

지금도 이고문의 말로는 참으로 육효에서는 김선생만큼 잘 하는 분이 없다고 회고할 정도다. 이고문의 회고를 전하면 作卦(괘를 만든다)하고는 ‘당신이 사는 집이 냇물 흐르는 곳이다’ 하는 정도까지 알았다고 하며, 근간에 일어날 현상은 귀산 같았다. 라고 한다.

 

위 명조에서 말해주는 데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두개의 辛金은 食神으로서 밥그릇과 같은 이치로 해석하며 물상학적 해석으로 보면 時計바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시시각각 일어나는 현상을 판단하는 점단으로 먹고 살아가는 이치가 타고난 팔자임을 짐작할 것이다. 그런데 財星(돈복)用神이 凍土에 暗藏되어 샘이 솟지 못하는 이치가 아니겠는가. 사주에 木이 있어야 재물을 지켜줄 것인데 守財神은 없고 消耗星만 왕성하니 그날 그날 먹고 살아갈 정도만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특히 제산학을 수학하려면 印星(학문덕)이 있어야 하는데 위 명조에는 인성이 있다 할지라도 추울 때 잠시 화로불 쬐는 정도에 불과하므로 근본적인 학문연구가 어려웠던 탓이니 생진사초하지 않는다면 구제불능이었던 것이다. 이럴 때 타고난 팔자를 바꾼다 하는 것은 곧 국가나 사회 및 가정환경을 완전히 뜯어고치거나 버려야 하는 법이니 보통사람들이 행하기에는 쉽지 않은 법이다.

 

백모씨는 부적을 팔며, 한판승부를 거는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수백만원씩 호가하는데 비해 김선생은 간이 작아서 기껏해야 5만원이 고정액이다. 그러니 의식이 곤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더라도 꾸준히 문객만 찾아와 준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대체로 부적을 파는 술객들은 궁색해서 부적을 권하지만 그러므로 인해 문객이 끊긴다는 것이다. 요즘에도 잡지마다 대문짝만하게 수십년째 광고를 내고 있는 서울의 술객 모씨는 평생 단골이 없을 정도로 일회성 부적과 액막이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순수한 명리학이 오해를 받게 되고 천시되는점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이다.

 

문객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치다. 그렇지만 버릇을 잘못 드리면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학문에 게으름 부리지 말고 양심있는 선비로 살고자 한다면 누구나 이루지 못할 것이 없겠지만 마음은 급하고 씨부리지 않고 거두려는 마음에서 고생을 자초하는 것이리라.

 

김선생은 부산을 한동안 방황하다가는 나에게 들려서 입산하여 물상론을 터득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는데 한참 후에 백씨와 충무로 갔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는데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정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역시 춥고 배고픈 명조가 되어 노년에 들어 免寒이 시급했던 것인가 생각된다.

 

다음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한다.

 

제산선생님께서 첫날 상담비로 받은 수입은 직접 챙기셨고 다음날부터 상담료를 모두 나에게 주시면서 용돈이나 쓰라고 하셨다. 그 후로 몇 번의 상담료 수입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함께 식사비용으로 사용했고 박장열군에게도 용돈을 주었으며 술객들이 찾아올 때마다 식사와 찻값을 지불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나 부산으로 내려올 때까지 함께 하면서 수 많은 분들의 명조를 연구하게 됐고 제산학의 이해를 위해 지도해 주셨으므로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말로 일취월장했던 것이다. 이때 물상통변론에 대한 문중비전을 알게 되었고 일부만 받았으며 신살활용법과 아울러 인과법에 대한 이론설명을 듣게 되었으나 정작 실관통변에서는 혜를 열지 않으면 어렵다는 말씀과 더불어 학문으로만 배우자와 자녀인연을 알고자 하면 실수가 생긴다는 말씀을 거듭 하셨다.

 

가령 木이 배필인연이라고 확신한다 할지라도 寅生 卯生이 있으니 이거다 하고 단정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천간에도 甲乙이 있으니 최소한 네 개의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를 정확히 지적하기에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부모의 뜻과 형제자매의 환경에 따라 변하게 되며 직업인연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이치를 모두 섭렵하려면 상당한 세월 수행을 하지 않고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시간이 나면 명리 이야기로 꽃을 피웠지만 많은 술객들도 만나는 계기가 있었으므로 두어달이 어느새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누님이 방문귀국해 있었지만 나는 제산선생님과 거의 시간을 보내며 수행을 했다. 선생님의 성품이 매우 소박했으며 택시를 타실때도 내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스스로 택시를 세우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택시를 잡아 드릴 것이니 그냥 계시라“고 해도 웃으시면서 소탈하고 자연스럽게 상신이 나서곤 했다. 그러면서 정이 들었고 대화가 자연스러워졌는데 하루는 선생님의 말씀이

 

“겨을 키우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과단성이 없으면 평생을 살아도 그 모양 그꼴이 된다.” 고 하시며 남들은 돈벌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동안 당신은 목숨을 걸고 修道했던 이야기와 더불어 하시는 말씀이 “가령 한달에 2백만원을 번다고 안주하다 보면 평생 2백만원짜리 인생으로 끝날 것이요, 10년간 공부하고 격을 키워서 2천만원짜리가 된다면 그 다음해 부터는 십배의 인생으로 격상한다” 라는 말씀이었다. 그 후로 10년만 더 산다고 할 때 기존의 가치보다 백배는 격이 커진다는 론리였다.

 

“차선생은 어떤 길을 택하겠느냐?”고 묻기도 하셨다. 참으로 맞는 이치라는 생각이었다. 앞으로 20년만 산다고 할지라도 10년이 지나서는 10배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니 당연히 격상할 필요가 이“T다고 화답했다.

 

선생님을 따라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사주를 보고 그 사람의 그릇이 얼마짜리인가를 판별할 수 있다는데 우선했다 할 수 있다. 한번은 어느 우체국 직원이었는데 財運이 당도해서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것이다. 당시 나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판단이 어려웠는데 선생님 말씀이 “너는 복 그릇이 작아서 쌀 한가마니가 한계인데 운에서 백섬의 쌀이 들어왔으니 탐재허욕이 발동하여 부정한 재물에 유혹을 받게 되므로 사직되었노라 현재도 재물운이긴 하지만 만일 사업에 투자를 한다면 월세집도 없이 패가망신할 것이라. 라고 통변하시는 것이었다.

 

그렇다 분수에 넘치는 재물이 오면 당연히 상학에서도 복과화생이라 했으니 복이 지나치면 재양으로 변한다는 이치다. 사주학에서도 가능한 통변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다로 결심하게 되었다.

 

이론이야 무슨 말은 못하겠는가, 명리에 물리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이론과 상식이 앞선다 할지라도 허구가 아니겠는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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