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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행의 길]박제산 선생님과의 첫 만남 (검토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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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1-24 16:51 조회2,2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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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산 선생님과의 첫 만남

 

1984년 봄

나는 서울 신촌에 공부방을 마련하고 불경을 사경하며 육효와 관상학을 연구 검증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주학도 기초적인 이론은 공부했지만 심오한 경지를 경험하지 못하여 사주학에 매력을 갖지 못했고 육효와 관상학에는 어느대가와도 맞서 볼만하다고 자부하던 시기였다.

 

 

사주학으로는 자평명리 명리정종 적천수 천고비전 명리요강 사주첩경 등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명리서는 두루 섭렵했으나 자질이 미달한 저자들의 오역된 이론으로 명리의 진수를 깨닫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사주이론에 대한 지도도 받기는 했지만 자강선생의 저서인 사주첩경만을 지도받고 격국이 무엇인지 용신이 무엇인지 말만 배웠을 뿐, 그 통변의 이치는 전혀 아는자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어느 책을 보아도 그릇의 대소구분조차 모르는 이론서로서 사주를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당시에는 신강신약을 구분하여 중화점을 찾는 것이 명리학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는데 한 가지를 들으면 열가지를 생각하고 파고들던 당시의 나로서는 많은 명조를 연구하면서 풀리지 않는 경험을 여러번 하게 됐고 소위 수십년씩 명리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지금의 역술인협회 화장을 비롯하여 떠돌이 술객 백모씨 등 장안의 대가라고 하는 분들을 만나서 토론을 해보아도 하나같이 신강신약에 얽매여 있었으니 사주학의 이치는 없는 것이다 라고 단정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왜냐면 내 사주가 신약이었는데 생조하는 운을 만나면 좋다고 했지만 사실로 生助하는 운에 많은 역경을 겪었던 과거검증이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다한 사람들의 명조를 대조해봐도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성품은 남달리 비판성이 강한지라 검증되지 않으면 무시하는 버릇이 있었기에 더욱이 사주학에는 신비를 느끼지 못했다. 또한 내 측근에 여러지인의 명조를 보더라도 이현령 비현령으로 지나간 일을 억지로 꿰어 맞출 수 있으나 사전정보없이 그 인생을 논하기 어려웠고, 어려서 그런 사주를 봤다면 과연 성장하여 미래에 이렇게 살아가리라고 할 수 있었겠나 하는 점 등이었다.

 

 

그러나 육효에 매력을 갖게 된 것은 여러 동기가 있었고 그 적중률이나 신비함은 그 당시로선 상당한 경지에 가까웠다고 믿었을 때이니 밤잠을 설쳐가면서 연구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육효학의 검증으로는 1981년도 부터였다고 기억되는데 당시 필리핀에서 최충일 권투챔피언전이 있을 때였다.

 

 

게임 하루전에 10여명의 공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점단을 해보니 최충일 선수가 다운을 빼앗고도 10회에 KO패를 당한다는 쾌를 얻게 됐는데 다음날 육효에서 점단한대로 되었던 것이며, 다음으로는 미국에서 모 권투타이틀전이 있었는데 역시 적중했고, 다음해인가는 김득구 선수가 미국에서 패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육효학으로 예고했던 것이니 그 신비가 극치에 다다르게 됐던 것이다. 그 외에도 수 많은 검증이 있다.

 

 

1982년도 여름 중동전쟁이 발발할 때였다. 당시 문경시멘트회사에 근무하던 모인이 중동으로 파견나간다고 했는데 괘를 얻어보니 김포공항까지 나갔다가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되돌아 올 것이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날 중동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으니 나 자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신비하게 적중했던 것이다.

 

 

그후 그 사람은 복직을 못하고 한직으로 한참동안 집에 머물게 되었던 일인데 이러한 순간사의 점단이 이처럼 신의 경지에 있었던 것이다. 한편 육효통변으로는 당시 종로에 사시던 김동석선생이 현대 술객중에 육효점단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분인데 정릉에 홍모씨도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김동석씨 만큼 육효통변을 잘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판단일 뿐이다. (약10년전 김동성씨는 일본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1984년 봄 어느날 신촌역 입구에서 여관업과 다방을 경영하는 모인(갑오생)의 부인(무술생)이 가출을 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득괘하고는 김동석씨에게 통변을 부탁했는데 外卦에 午가 동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동석씨는 자기가 득괘를 하면 틀리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내가 득괘해서 물으면 통변이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로 적중했다. 이는 득괘에 정신을 모아야 한다는 증거라 하겠다.

 

 

김동석씨가 통변하며 말하기를 차선생은 정기가 맑은 분이니 득괘가 정확할 것이다. 그러므로 글자그대로 통변하면 틀림없을 것이다. 라고 하며 말하기를 午가 동했다면 그대로 방위는 午方으로 봐야할 것이며 지역은 글자 발음대로 오산이다.

 

 

오화가 동하여 무슨변효가 들어왔느냐고 하였는데 아마도 그날의 일진으로 역마살로 변효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역마는 움직이는 것이니 오화를 동력이나 전기로 봐야 할 것이니 모터공장으로 보면 될 것이고 다시 그 사람의 성씨는 오씨일 것이다. 라고 하는게 아닌가!

 

 

모든 통변을 午火 하나에 걸었던 것이므로 어찌보면 너무 추상적인 통변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지만 그대로 말해주었는데 그 사람의 말이 오산에 오씨라는 처가의 친척이 있다는 것이다. 오산에서 모터수리업을 한다며 반색을 하고는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나도 참으로 신비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다음날 모씨가 와서는 오산에 다녀왔는데 자기 부인을 만나지는 못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도착하니까 한시간전에 나갔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때 김동석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실을 이야기하고는 그렇다면 가출인을 만나지 못할 것도 알았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더니 다시 괘를 얻어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좀더 신중한 해석을 했더라면 역마로 변효가 들어왔으니 몇시쯤 그 집을 떠나리라는 통변도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득괘를 했는데 이번에는 內卦에 二爻가 동하는 것이었다. 내괘는 가까운 곳이며 二爻는 내당(안방)으로 본다. 내심으로 집 근처로 왔겠구나 하며 김동석씨에게 물으니 통변하기를 동효의 오행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마도 申金으로 기억이 된다.

 

 

김동석씨가 말하기를 이번에는 차선생이 통변해 보라고 하여 신금이 내당에 임했으니 신촌이나 신당동이라고 해도 되겠냐고 하니 그렇다는 것이었다. 사실로 신당동에 친척이 여관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신기했으나 신당동에 가서 가출인을 만날 수 있느냐가 관심사였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때의 일진과 상극이 되므로 합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판단되어 가도 만나지는 못할 것이고 그날 밤에 전화는 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현실이 그렇게 나타났던 것이다. 다음날 남편이 와서는 신당동에 갔었는데 또 나가고 없어서 만나지 못했다고 하며 언제 귀가하느냐고 물었는데 그달 22일에 귀가는 하는데 다시 가출하게 될 것이니 귀가하거든 신촌에 살지말고 강서구 화곡동 근처로 가서 살면 가출이나 이별은 면하게 될 거이다. (이는 관상의 방위론으로 통변한 것이다.) 라고 일렀는데 정말로 22일에 귀가했다가는 다시 가출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제산선생님과 만났을 때 가출인의 남편을 만나게 되어 제산학과 관상학의 신비했던 일화가 탄생하게 된다. 제산선생님의 학문을 검증하게 되는 첫 번째 시험대였다 할 수 있다.

 

 

그런 후, 초여름 어느날 동양권투챔피언이었던 박종팔선수가 동양타이틀에 도전하는 날이었는데 하루전에 괘를 내어보니 박선수가 11라운드 2분만에 KO로 승리한다는 점단을 얻게 되었다. 이 소리를 들은 몇 사람이 다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며 육효의 신비를 검증하게 됐는데 통변의 결과대로 박선수가 11회 1분 몇십초만에 동양챔피언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일이 자주 생겼던지라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지만 육효의 신비를 더욱 신뢰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반론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나의 셋째동생이 삼성에 근무했었는데 육효의 신비함을 보고는 회사를 사직하고 명리를 공부한다고 하여 제사선생님을 따라 부산까지 왔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현재 한의사가 되어 있다.

 

[세째동생은 내가 입산수행할 때부터 자주 찾아주었고 修道에 관심이 많았으며 나를 따르면서 소위 신출귀몰한다는 이색체험도 여러차례 경험한바 있는데 제산선생님 사모님을 만나면서 실망하고는 역학계를 떠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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